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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리의 마왕 신해철

by 웅탐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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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왕 '신해철'

록 음악부터 일렉트로니카 재즈 국악까지
언제나 다양한 장래의 음악을 시도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섭렵한 만능
싱어송 라이터, 음반 프로듀서, 라디오 dj
프로그래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천재

▲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영원한 마왕 '신해철' / 사진 출처-잡지 VOGUE KOREA

소년 신해철

1968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중구 회원동에서 1 남 1 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번데기 장수'였다고 하며 클라리넷,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배우긴 했으나 선생님으로부터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중동중학교 재학 시절 학급 반장을 맡으며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였으나 보성고등학교의 진학 이후 여러 음악을 접한 신해철은 음악과 사랑에 빠지면서 조금씩 학업을 등한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해철신해철
▲ 어린시절의 신해철 / 출처 - 신해철거리 홈페이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앨범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아 '이틀간 학교를 안 가고 음악만 들었다.'라고 회상할 정도로 음악에 푹 빠진 그는 친구들과 밴드 '각시탈'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이 시기 여러 밴드를 동경하여 쫓아다이게 됩니다. 이때 만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인데 부활의 팬클럽 회장을 자처하며 김태원과 친분을 쌓았고 이후 그에게 기타와 작곡을 배웠다고도 합니다.

 

신해철신해철
▲ 고등학교 진학 후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 출처 - 신해철거리 홈페이지

무한궤도 '그대에게'

고등학생 시절 활동한 밴드 각시탈은 멤버 중 신해철과 김재용을 제외한 친구들이 대입에 떨어지자 자연스레 해체됩니다. 여담으로 신해철은 고교 시절 음악을 하느라 학업은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인지 우수한 성적으로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훗날 그의 아버지는 "음악만 안 했더라면 서울대도 갈 머리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을 찾아 서광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때는 전두환 군사 정권인 1987년 최루탄 냄새가 가득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 신해철은 다시 한번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서울대 치의학과 김재용과 고등학교 동창 서울대 인류학과 조현문과 함께 트윈 키보디스트 체제로 밴드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후 연세대 토목공학과 드러머 조연찬과 그의 동기 베이시스트 조형곤을 영입해 밴드 무한궤도의 엄친아 라인업을 완성하게 됩니다. 사회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다른 락 밴드와는 다르게 무한궤도는 부모님들의 빵빵한 지원을 받으며 활동한 굿보이밴드였습니다.

무한궤도
▲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로 짜여진 초창기 무한궤도의 맴버들

김태원과의 인연을 이어오던 신해철은 이 시기 무한궤도가 밴드 부활의 오프닝 공연을 맡을 정도로 실력과 인맥을 키우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밴드의 성장과 동시에 직면한 음악적 방향성이라는 문제는 신해철은 물론 무한궤도의 전 멤버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그들의 독특한 트윈 키보드라는 구성과 대학생 엄친아 밴드라는 캐릭터가 오버에서도 언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적 고민이 계속되던 어느 날 분식집에서 튀김과 라면을 먹는 중 한 멤버가 "야 우리 대학 가요제나 나가자."라고 이야기했고 멤버들 간의 갑론을박이 계속되던 와중에 멤버 조형곤이 덜컥 원서를 접수해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1988년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연합 타이틀로 대학 가요제에 나가게 된 무한궤도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예선을 통과 결선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결선에 진출한 16 팀 중 16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전설로 기리 회자될 인트로가 잠실 체조 경기장을 가득 메우며 신해철의 명곡 '그대에게'가 전국에 방영되었고 그렇게 그들은 압도적인 성적으로 대상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그대에게는 신해철이 집에서 멜로디언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하며 아들이 음악 하는 걸 못마땅해하던 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 대학가요제 마지막 16번으로 참가한 무한궤도. 전주가 울리자 많은 사람들은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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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해철

무한궤도와 함께 대학가요제의 스타로 발돋움한 신해철에게 여러 소속사에서 러브콜이 쏟아졌으나 신해철의 스타성을 눈여겨본 대부분의 소속사는 그에게 솔로 가수로서의 데뷔를 추천할 뿐이었다. 이에 대한 신해철의 답은 "아니요. 전 밴드 할 건데요."였고 그렇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며 소속사를 찾아 헤매던 신해철은 대학가요제 심사위원이었던 조용필의 소개로 드디어 소득사와 계약을 맺습니다.

 

이 시기 키보디스트 정석원을 영입하여 3인 키보드 구성으로 1집 앨범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합니다. 앨범은 크게 성공하였으나 전문 음악인을 꿈꾸던 신해철과 달리 다른 멤버들은 음악을 주업이 아닌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생각했고 각자 자신들의 꿈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맙니다. 조형곤, 조현문, 김재용, 조현찬이 탈퇴한 자리를 드러머 이동규, 기타리스트 정기원, 베이시스트 김재성이 합류하여 잠시 동안 밴드 활동을 더 이어가지만 결국 무한궤도는 해체됩니다.

 

1989년 10월 15일 신해철은 당시 젊은 가수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어 문제가 되었던 대마초를 흡연한 사건으로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가수 이승철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게 되는데 이승철 대마초 사건이 터지고 불과 9일 만에 다시 한번 뉴스가 나오면서 당시 가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대마초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마초 사건 이후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자숙한 신해철은 소속사와의 남은 계약 기간을 지키기 위해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솔로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 '슬픔 표정 하지 말아요'가 대히트를 치며 신해철은 단숨에 하이틴 스타로 등극하며 아이돌 스타급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 20대 초반의 신해철. 그의 솔로곡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대히트를 친다.  

 

그러나 신해철은 단순히 곱상한 외모와 대중성을 갖춘 하이틴 스타를 뛰어넘어 뮤지션으로서의 한 단계 도약을 시작하는데 솔로 2 집 'my self'의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당시 대한민국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던 미디, 즉 컴퓨터 음악 작업 거의 혼자 해내며 당시의 대중가요와 차별화를 둔 것입니다.

 

대표 수록곡 재즈 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에 너 등으로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고 이 앨범은 대한민국 최초의 미디 음반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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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넥스트의 탄생

뮤지션으로서의 싹을 틔운 솔로 가수 신해철은 두 번째 솔로 앨범 활동 이후 무한궤도 해체 직전의 멤버였던 드러머 이동규와 2집 투어 공연 당시 세션으로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함께 1991년 넥스트라는 락 밴드를 결성합니다.

 

▲ 그룹 NEXT의 1집 'HOME'

1집 앨범 'HOME'에서 테크노와 락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선보였고 특히 인형의 기사 파트 2, 도시인 등이 크게 히트합니다. 그러나 1992년 11월 신해철의 방위병 입대와 1993년 1월 다시 한번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감옥 신세를 지며 밴드 넥스트는 암흑기를 갖게 되는데 특히나 1989년 무한궤도 활동 당시 대마 흡연으로 이미 한 차례 구속된 적이 있던 신해철은 또다시 대마초 사건과 연루되어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게 됩니다.

 

1994년 신해철은 넥스트 컴백 앨범으로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합니다. 이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가 철학적인 가사로 유명한 '날아라 병아리'입니다. 앨범 활동 도중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영입되고 기존 멤버들과 교체가 이루어지며 신해철,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의 라인업을 형성합니다.

 

1995 2년에 3 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를 발표하였고 1997년에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갑니다. 특히 4지 대표곡 'Lazenca save us'는 당시 mbc에서 방영되었던 만화 영화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였으며 오케스트라 음악과 록 음악의 접목을 시도한 엄청나게 도전적인 곡이었고 남자들에게는 엄청난 고음으로 유명한 곡이며 2016년 복면가왕에서 하현우가 불러 화제가 되었던 전설의 곡입니다.

 

▲ 복면가왕에서 'Lazenca save us'를 열창한 음악대장

그리고 4집 발표 기자회견에서 신해철을 돌연히 4집이 넥스트의 마지막 정규 앨범임을 발표하며 갑작스레 밴드 해체 선언을 합니다. 일본 진출 제의 수용 여부로 인해 멤버들 간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였고 이에 신해철은 멤버 교체를 통한 넥스트의 일본 진출보다 멤버들에 대한 예우를 위해 밴드 해체를 정했다고 합니다. 넥스트 해체 이후 신해철은 영국으로 음악가 프로듀싱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납니다.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다시 한번 넥스트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프로듀싱 공부를 하며 신해철은 솔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당시 발표한 여러 곡 중 하나가 바로 민물장어의 꿈입니다. 신해철은 '민물장어의 꿈에 대해 이 노래 가사가 자신의 묘비명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애착이 큰 곡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영화 세기말에 OST를 제작하였고 2000년에는 유학 시절 만난 데빈 리, 빈크와 함께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2003년 신해철은 비트겐슈타인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데빈과 새로운 멤버인 베이시스트 원상욱, 닥터 코어 911의 소속 멤버인 드러머 이용준, 키보드와 기타를 같이 연주하는 뮤지션 김동혁을 영입하여 넥스트를 재결성하고 이듬해인 2004년 5 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을 발매하였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그룹 NEXT의 5집 '개한민국'

정치, 종교,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세대 갈등, 노숙자, 성매매 등등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이루어진 수록곡들로 인해 절반 이상의 곡이 방송사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도 유명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2006년에는 초기 멤버였던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넥스트에 복귀하며 또 한 번 멤버 교체를 이루었고 키보디스트 지현수를 추가로 영입하며 육 인조 밴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2월 말 5.5 집 'ReGame? the 2nd fan service'을 발매하며 그전 넥스트의 전성기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고 특히나 윤도연, 채연, 먼데이키즈 등이 참여하여 대중적인 앨범으로의 면모를 강조했습니다.

 

새로 결성한 넥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신해철은 6집 '666 Trilogy Part I' 발매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넥스트 활동의 공백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2014년 가을, 기존의 넥스트와는 또 다른 시스템의 오케스트라 형식의 넥스트 유나이티드 결성 계획을 발표하며 음악에 대해 때 다시 한번 열의를 불태운다. 그러나 그해 10월 27일 신해철은 불의의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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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신해철은 장협착 합병증으로 10월 17일 서울 스카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작스럽게 쓰러진 후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하게 됩니다. 쓰러지기 전 그의 마지막 말은 "숨을 못 쉬겠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해철 사망 이후 검찰 조사를 통해 주치의가 위를 접어 축소하는 위 축소 수술을 신해철이나 그의 가족에게 동의 없이 진행하였으며, 수술 후 신해철이 통증을 호소하여도 단순히 마취가 풀리며 발생하는 일반적인 통증이라 치부하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전 국민적인 공분을 사게 되었고 결국 해당 의사는 형사 처벌과 함께 유족에게 약 12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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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사진출처 - 아주경제신문

그가 남긴 음악이라는 노력의 산물과 재능으로 인해 그의 빈소에는 유명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아직까지 그의 노래와 이야기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있습니다.

 

소신 있는 연예인

신해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유명합니다. 노무현의 선거유세를 도왔고 노무현이 사망했을 당시 추모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도를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문재인의 선거 유세를 도우며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또한 100분 토론과 여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진보 의식이 가득한 연예인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대마초 비범죄와 간통제 폐지, 체벌 금지 등에 논리적이고 소신 있는 발언과 주장으로 최고의 비정치인 논객으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그의 사망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가 아는 신해철 씨는 불합리한 것에 앞서서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때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울려 퍼지던 그대에게, 벅찬 음악은 제게 평생의 고마움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조문을 했습니다.

 

영향력

수없이 많은 곡을 작곡하고도 단 한 번의 표절 시비도 없었던 신해철은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승기, 싸이, 김동률 등의 가수를 직접 프로듀싱하였으며, 특히 신해철의 도움을 최고의 섹시 디바가 된 엄정화 '신해철이 아니었으면 가수 엄정화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신해철은 음악에 있어 선구자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데 특히나 컴퓨터 음악, 즉 미디를 처음 대한민국 가요계에 전파시킨 인물이 바로 신해철이며 이는 이후 문화 대통령으로 불린 서태지와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싸이 또한 신해철에게 미디 음악 장비 사용법과 곡 제작법을 배웠다고 하며 신해철 사망 후 서태지는 그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에게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라고 회고했고 싸이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들려주던 음악가'라고 주모했습니다.

 

부활의 김태원과는 스타와 팬 스승과 제자이자 같은 음악인으로 서로 영향을 주었는데 신해철이 죽자 김태원은 '죽음과 삶 앞에서 고 신해철 덕분에 희망을 가졌다.' 라며 그를 회상했습니다.

 

'나는 가수다'와 '복면가왕'에서 엄청난 인지도를 쌓은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도 신해철의 오랜 팬으로 유명한데 2016년 MBC 연예대상에 특별상을 수상하며 소감으로 하늘에서 저를 기특하게 바라보고 계실 신해철 선배님께 다시 한번 이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원한 우리의 마왕

46년 길지 않은 인생 동안 그가 가졌던 별명은 수없이 많지만 단연 팬들에게 있어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마왕입니다. 신해철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코스트 스테이션'의 팬들이 욕설과 반말을 서슴지 않으며 소신 있게 청취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 그의 카리스마에 반해 붙여준 별명 '마왕' 우리 곁에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왕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수년이 흘렀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는 마왕 신해철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진 신해철 거리가 생겼고 이 거리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러 조문 글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글 중 한 구절을 소개해 봅니다.

 

나의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죠.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 그대에게..

- 유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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