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를 대표하던 국내 기업 '아이리버(IRIVER)'
아이리버라고 하면 현재 40대와 30대가 그리고 20대 후반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브랜드이지만 아마 어린 분들은 '이게 무슨 브랜드야?'라고 하실 겁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재생하고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죠. 하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는 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재생하고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이리버는 MP쓰리 시장을 점령한 한국의 벤처 기업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잘 나갔다 정도가 아니라 한국 MP3 시장의 80%, 세계 시장의 25%를 차지한 세계적인 기업이었습니다. '한국의 애플'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실제로 애플에서 이 회사를 상당히 견제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이 스마트폰으로 애플과 경쟁을 하듯 아이리버는 MP3로 아이팟과 경쟁을 했었죠.
아이리버의 시작
아이리버는 처음에 레인콤이라는 회사로 시작했습니다. 삼성을 다니던 양덕준이라는 인물이 회사를 나와서 설립했던 것입니다. 1990년대는 소니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때였고 2000년대는 MP3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음악은 디지털로 변해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레인콤이 시장을 휩쓴 이유는 애플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디자인이 상당히 획기적이었죠. 레인콤의 대표 양덕주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력은 물론 디자인이 남달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에게 찾아가 디자인을 의뢰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아이리버 프리즘'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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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시리즈를 개발할 때 이노디자인이 준 시제품을 보고 양덕주 사장은 개발팀에서 "디자인이 바뀌거나 크기가 커지는 것은 안 된다. 어떻게든 구겨 넣어라.'라고 할 정도로 성능만큼 디자인을 중시했다고 하며 그런 탓에 개발팀이 바뀌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탄생한 아이리버 프리즘 시리즈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납니다.
이 시리즈 하나로 한국 MP3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되고 잠수함을 본뜬 디자인을 모델인 크래프트도 단위 품목 판매 100만 개를 기록하며 아이리버는 코스닥 시장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아이리버의 성공 그리고 온라인
아이리버의 성공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통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전자제품은 전자상가에서 사는 게 보편적이었죠. 하지만 아이리버는 온라인을 활용했습니다. 물론 전자상가에서도 아이리버 제품을 살 수 있었지만 MP3의 주 구매층은 10대에서 20대로 온라인이 익숙한 세대였기 때문에 전자상가보다는 온라인에서 더 많이 팔렸습니다.
AS나 불만 사항도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제품의 성능 업그레이드도 온라인으로 제공하면서 고객들이 더 다가가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리버의 제품들은 단순히 노래를 재생해 주는 기계가 아닌 패션 아이템처럼 소비되었고 젊은 세대는 아이리버 제품을 목에 걸고 다니며 열광했습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MP3를 쓰고 있는 사람은 전부 아이리버 제품을 쓰고 있을 정도로 아이리버는 인기가 많았습니다.
창업 5년 만인 2004 년 아이리버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4500억의 매출을 기록하게 됩니다. 대기업들이 지배한 한국 경제시장에서 전무후무한 벤처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양덕준 대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렸고 아이리버는 한국의 애플로 불렸습니다.
아이리버의 세계 진출
아이리버는 2001년부터 미국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해 미국 시장점유율에서도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아이리버 제품을 극찬했고 애플은 MP3 시장에 뛰어들며 라이벌로 아이리버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아이리버의 상승세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다른 디자인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세계시장을 정복해 나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리버의 하락
하지만 아이리버의 상승세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았던 분이시라면 기억나실 텐데 이때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던 시기였습니다. 시민 의식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음원의 가격은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노래를 다운로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은 알지만 계속해서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여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애플이 아이튠즈와 결합하여 아이팟을 출시했고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을 구입해서 아이팟에서 음악을 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은 불법으로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게 더 오래 지속되었지만 해외 시장은 달랐습니다. 저작권이라는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사람들은 불법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합법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이팟으로 점점 갈아타게 되었죠.
편의성도 한몫을 했습니다. 노래를 다운로드하고 MP3를 집어넣는 것까지 기존 아이리버를 포함한 MP3 기기들은 과정이 꽤나 불편했지만, 아이팟은 편하고 상당히 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팟이 점유율을 뺏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가격입니다. 지금이야 감성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싼 가격을 부르는 애플이지만 명확한 경쟁자가 있고 점유율을 뺏어와야 하는 사황이었던 터라 당시 애플은 가성비 전략을 사용하면서 저렴하게 판매를 하였습니다.
더 편하고 저작권 문제도 없고 더 저렴한데 안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 번 아이팟의 편함을 맛본 사람들은 다시는 아이리버로 돌아오지 않았죠. 이때부터 아이리버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 뛰어난 디자인은 당연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리버도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기에 많은 시도를 하게 됩니다. 카메라도 달아보고 제품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포맷의 파일을 넣을 수 있게 만든다던가 사용자가 직접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팟이 떠버린 상황에서 아이리버의 후속작들은 별로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의 yepp과 아이팟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MP3의 내수시장에서도 아이리버는 점점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제품의 성능과 노이즈 이슈까지 터지면서 아이리버는 점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기능을 더 많이 넣어서 고객의 마음을 돌려보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아이리버는 노하우와 기술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제품에 엄청나게 많은 기능과 버튼을 넣기 시작합니다.
아이리버의 잘못된 선택
아이리버는 소니의 워크맨을 디자인과 편리함으로 무너뜨렸는데 아이리버는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뒤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목적에 부합해야 하며 싸고 예쁜 것이었죠. 아이리버는 점점 아이덴티티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었고 아이리버는 기술력으로 다른 회사의 MP3를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H10이라는 제품을 출시합니다. 이 제품이 재밌는 건 광고인데요. H10은 말 그대로 아이리버에 사활이 걸린 제품이었습니다. 엄청난 마케팅비와 재고를 준비했죠. H10의 출시와 함께 광고가 미국 전역에 걸리고 퍼집니다. 모델이 사과를 씹어 먹고 있는 광고인데 딱 봐도 애플을 저격하는 광고였습니다.
여기다 애플을 견제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까지 나서서 H10이 광고를 해줍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미국은 난리가 날 정도로 집중이 쏠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아이리버의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터치 스크롤에서 문제가 있었고, 아이튠즈의 대항마로 만든 아이리버 플러스는 사용이 불편했으며 하드디스크에까지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엄청난 비용이 든 시체품 H10은 엄청난 반품 요청까지 쇄도하게 됩니다.
결국 4500억에 달하던 매출은 2006년 1000억까지 감소하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전환이 되어 버립니다. 해외 시장에서는 애플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국내 시장에서는 인지도가 있었지만 괜찮은 경쟁자가 많아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아이리버는 끊임없이 제기를 위한 노력을 했는데요. 전자사전 딕플을 내놓으며 전자사전 시장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디즈니와 계약을 해서 미키마우스 모양의 작은 MP3를 출시하여 많이 팔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정악화로 인해 주요 인력들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고 점차 선도하는 기업에서 따라가는 기업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 들어오면서 MP3나 전자사전 같은 전자제품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고 아직도 수요가 있는 카메라 시장과는 달리 MP3와 전자사전 시장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기존의 전자제품들 이상으로 스마트폰이 발전을 해버렸기 때문이죠.
현재의 아이리버
이후 아이리버의 재정은 더더욱 악화되기 시작했고, 2014년 SK그룹의 인수되면서 '드리머스 컴퍼니'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드리머스 컴퍼니로 바뀐 아이리버는 디바이스 사업에서 손을 조금 떼고 콘텐츠 플랫폼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합니다. 현재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FLO(플로)를 운영하고 SM, JYP 등 대형 음반사의 음원을 유통하는 업무도 하면서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아이리버는 아직 존재하고 있습니다. 선풍기와 전동 칫솔, 손난로, 스마트 체중계 등 디바이스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TV도 팔고 있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더 다양한 상품도 있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괜찮은 제품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주변에 아이리버 제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그렇게 많이 팔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때 한국의 애플이라 불리던 아이리버를 만든 양덕준 사장은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며 촉망받는 인재 중에 인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인성은 스티브 잡스와 많이 달랐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주목받기보다는 공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렸으며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바닥부터 기업을 일으켜 올라온 양덕준 사장의 기업가 정신 만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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