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타 스캔들'로 뜨거운 재미를 몰고 다니는 칸의 여왕 배우 '전도연'을 아시나요?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그녀의 연기력 때문에 외골수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배우 전도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기력 배우 전도연
본명 전도연 출생 1973년 2월 10일생이며 165 센티미터 혈액형은 O형입니다. 1990년 CF 존슨 앤드 존슨으로 데뷔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연기력으로는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는 등 연기력 면에서 아직 전도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여배우는 없다는 평가를 받는 연기파 배우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칸의 여왕'에 등극하는 등 충무를 레전드로 불리고 있죠.
전도연은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창덕여고 3학년 때 시절 청소년 잡지 응모에 당첨돼 상품을 타러 잡지사를 찾아간 것이 생각지 않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잡지의 표지 모델로 발탁된 전도연은 1990년 "깨끗해요."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운 존슨즈 베이비 로션 광고의 CF 모델로 데뷔해 얼굴을 알렸고 연이여 초콜릿 미니쉘 CF를 찍으며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MBC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최진영예 상대역으로 연기를 시작했으며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나오면서 유명해졌는데 사실 이때까지는 전형적인 하이틴 스타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도 출연했으며 드라마의 주연급보다 조연급으로 주인공의 여동생 또는 주변 인물 등으로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타고난 동안으로 비슷한 연배의 청춘스타들에 비하면 수수하고 평범한 역할을 많이 맡았고 대본 암기력에 있어서도 당시에는 특별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데뷔 초에는 배우를 오래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스크린 데뷔
전도연의 스크린 데뷔작은 장윤현 감독의 멜로 영화 '접속'입니다. 사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게 있어 전도연은 이 작품의 최우선 섭외 대상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pc 통신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친밀감을 키워가는 두 남녀를 그린 영화는 서울 관객 67만 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하며 1990년대 한국 멜로 영화의 대표작이 되었고 전도연은 일약스타의 반열로 뛰어올랐습니다.
이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한석규는 전도연을 두고 연기에 대한 본능적인 끼와 감성이 놀랐다며 감탄했다고 평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그해 제35회 대종상영화제와 제1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은 모두 전도연의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접속', '약속', '내 마음의 풍금'에서 보여준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CF용 배우 또는 준 아이돌 배우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연기 변신
그러나 1999년 영화 '해피엔드'에 출연하여 연기 인생 최초로 애인과 불륜에 빠진 유부녀로 변신하며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전도연은 당시에는 흔치 않게 여자배우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라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고 소감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한편, 영화는 상영시작 후 2분 만에 높은 애정 수위가 펼쳐지고 전도연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나오며 관객의 주목을 확 끌어버렸는데 한창 주가를 높이던 여자배우치고는 대담한 결정이라 많은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한국 영화 중 베드신 순위를 매기며 항상 해피엔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배드신을 찍는 많은 신인 여배우들이 자신은 몸을 사리거나 그렇다고 노출만을 위한 노출을 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면서도 '전도연 선배처럼 배드신에서 과감하게 배역에 녹아드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칸의 여왕
2007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한 영화제의 여우주연수 수상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이며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시상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후 '칸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여담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을 처음으로 국제영화제에 가본 것이라고 하며 그래서 칸 영화제가 얼마나 큰 영화제인지도 몰랐고 여우주 연상을 받은 직후에도 별감 감흥이 없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전도연이 너무 둔감해서 이창동 감독이 놀랐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귀국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상의 무게가 느껴졌다 합니다.
그녀는 '칸의 여왕' 이전에 영화 '약속' 때부터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도연은 눈물 연기를 정말 잘하는데 밀양 촬영 때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려야 했는데 쉬워 보이지만 카메라의 움직임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고난도 연기였습니다. 그런데 전도연은 눈물 연기를 NG업이 단번에 잘 해냈다고 하며 영화 '하녀' 촬영 때도 임상수 감독이 "5초 뒤에 눈물 한 방울을 흘려주세요."라고 지시했는데 정말 딱 5초 뒤에 눈물 한 방울 흘려서 감독이 감탄했다고 합니다.
목소리
비음이 섞인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특이해서 한때 성대모사도 유행했는데요. 전도연의 목소리는 처음 들을 땐 특이할지라도 연기할 땐 캐릭터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어서 좀 더 실감 나는 연기를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40대임에도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는 요인으로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알 수 있듯이 정형화되고 약간은 우렁찬 발성을 요구하는 사극에서는 이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동기 유재석
유재석과는 서울여대 방송 연예과 91 학번으로 동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1991년 대학 개그제에 참가한 유재석을 방청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백상 예술 대상 시상식 때 오랜만에 만난 유재석이 "도연아 오랜만이야?"라고 인사했는데 "저도요."라고 존댓말로 답했다고 해서 수상소감으로 유재석이 이를 언급하자 본인이 생각해도 웃겼는지 관객석에서 빵 터진 모습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영화들
2010년 영화 '하녀' 이후로는 손익분기점조차 넘는 작품이 없는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작품 선택이 상당히 마이너 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름값에 비해 티켓 파워가 부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한국 영화계에서 절대 떼놓고 언급할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여배우이지만 대놓고 흥행을 의식한 재난영화 '비상선언'조차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400만 이상 흥행작도 없고 히트작을 배출한 것도 사실상 2005년작 '너는 내 운명'이 마지막이라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연기력과 흥행이 항상 같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우주연상
이젠 작품만 찍으면 여우주연상 후보에 당연히 오르는 수준의 배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연기력 절정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너는 내 운명'으로는 7개, '밀양'으로는 9개, '무뢰한'으로는 4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최초로 네 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력에서는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 까지 4번의 데케이드를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베드신 전문배우?
"배드신이 들어간 영화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고는 여배우들의 자유다.", "단순히 배드신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시나리오를 거절하는 여자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영화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배우 문소리와 함께 전도연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피엔드에서 주진모와의 파격적인 베드신으로 '실제로 하는 거 아니야?'라는 오해가 있을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해피엔드의 배드신이 전도연의 발목을 잡거나 배우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는 평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후 그녀는 작품을 위해서라면 파격 배드신도 마다하지 않았고 단역 스캔들에서도 파격적인 배드신으로 자신만이 소화할 수 있는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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