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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저씨 같은 농구대통령 - 허재 이야기

by 웅탐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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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를 켜면 예능프로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때 농구대통령이라 불리던 사나이 '허재'인데요. 농구 대스타에서 극대노의 감독을 거쳐 이제는 누구보다 인상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허재. 그는 어떻게 농구 대통령에서 예능 아저씨가 되었을까요? 오늘은 최근 가장 핫한 아저씨 허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농구대통령-허재
▲ 기아에게 수차례 우승컵을 안겨준 농구대통령 '허재' / 출처-스포츠조선

허재이야기

농구대통령, 다혈질, 코제, 술쟁이 등으로 불리는 허재는 1965년생으로 올해 58세입니다. 키 188cm에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그 양천 허 씨 출신으로 춘천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허재는 어린 시절부터 농구를 잘했었다고 하는데 과거 군인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었던 허재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며 유년기를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특별활동으로 농구를 시작하며 태생부터 강했던 승부욕과 운동 신경 덕분에 금세 농구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농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농구부가 해체되어 그의 농구 인생도 이렇게 금방 끝이 나나 싶었는데 다행히 허재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 덕분에 타 학교에서 스카우트를 받아 계속 농구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허재는 당시 프로팀들로부터 엄청난 러브컬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1984년 아시아 청소년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병역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했던 그는 'KBL' 출범 이전의 실업 농구팀들로부터 수억 원의 계약금을 제의받다가 아버지와 상당히 친한 사이이자 모교인 중앙대 농구팀의 감독인 정봉섭의 추천으로 선배인 김유택과 한기범이 있던 기아 자동차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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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시 특급선수들을 모두 스카우트했던 기아는 이후 5년 연속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허재 또한 당대 최고의 농구부터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다혈질의 허재는 경기 도중에 상대 팀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는데 인기 선수였지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거센 항의를 한다든가 상대팀을 약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었던 그는 신인 시절부터 인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1991년에 농구대잔치 결승을 치르던 와중 자신을 마크하던 임달식이 팔꿈치 공격을 하자 분노한 허재가 임달식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때 갑자기 허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허재의 턱을 냅다 돌려버렸던 임달식, 결국 두 사람은 사이좋게 손잡고 퇴장을 당하며 이후 퇴장당한 허재가 억울한 마음에 다시 소리를 지르다 현대 센터였던 김성욱에게 또 한 대 맞고 순식간에 고트가 아수라장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허재는 원인 제공자라는 이유로 6개월간 선수 자격 정지를 당했고 임달식은 1년간 자격 정지를 받고 그대로 은퇴를 하였다고 합니다.)

 

허재는 농구 생활을 하며 아버지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집마당에 농구 골대를 설치하거나 나무 때문에 운동이 잘 안 된다던 허재를 위해 아끼던 정원수까지 모두 배워버릴 정도로 허재가 농구를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는 그의 아버지, 생전 허재의 아버지는 아들의 훈련 태도와 경기 내용들을 적은 농구 선수 허재에게 보내는 일기를 20년 넘게 쓰셨고 허재의 몸보신을 위해 먹인 뱀만 해도 약 12000 마리가 넘을 정도로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부성애가 아닐 수 없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임종을 보지 못한 허재는 큰 슬픔에 엄청 울었다고 합니다. 

 

허재-허웅-허훈
▲ 허재와 농구 선수인 두아들(허웅, 허훈)

허재는 아내와 결혼하기까지 꽤나 심한 반대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지인의 소개를 받아 처음 만나게 됐던 두 사람은 당시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아내라 허재가 유명인인 줄도 몰랐었다고 하며 그를 만난 다음 날에 다른 남자를 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호텔로 향하다가 우연히 허재와 다시 만나게 되며 서로에게 반해 먼저 대시를 하는 등 매일 4시간씩 전화를 걸며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허재 라이벌팀이었던 고려대를 나온 아내의 오빠가 불처럼 다혈질적인 허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호텔에서 허재를 만나본 그녀의 어머니가 남자다워서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그렇게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화려했던 선수를 은퇴하고 농구탐 감독이 된 허재는 종종 경기에서 극대노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경기 중 폭발한 허제는 '블록'을 '불낙'이라고 말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웃음을 안겨준 적이 있습니다. 허재는 심판에게  "이게 불낙이야? 이게 불낙이냐고?"라는 말을 약 40초 동안 쏟아부었는데 이 장면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며 KBL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밈으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나중엔 도미노피자 광고에 허재가 출연할 정도로 허재를 대표하는 인생짤로 남게 되었습니다.

 

 2011년 농구 국가선수권 대회에 참석했던 허재가 '왜 한국 선수들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중국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습니까?'라는 말도 안 되는 중국 기자의 질문에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XX 진짜 짜증 나게"라는 말을 하며 기자회견장을 그대로 박차고 떠난 적이 있는데, 이때 중국 기자들이 '고백홈'이라고 야유를 하며 허재에 대해 안 좋은 얘기들을 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똑같이 대해주는 게 답이 아닐까요?

 

허재는 술과 관련된 사고를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의 부끄러운 일로 남은 음주 사건들. 공인으로서 너무 많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1993년 동아시아 대회를 목전에 두고 태릉성수천에서 술판을 벌이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으며 같은 해에 장남의 허웅의 탄생을 축하하며 친구들과 함께 술을 먹고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어 100일간 면허정지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듬해 아시아 범프콘 대회가 끝난 뒤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먹던 허제가 옆 테이블에 손님과 쌈박질을 벌여 폭행 혐의로 입건된 적도 있고 1995년엔 또다시 술을 마시고 불법 유턴을 하다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를 박으며 사고를 일으며 불구속 이건이 되어 면허 취소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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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996년 올림픽 기간 중에는 한인타운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 6개월간 선수 자격정지가 되었고 같은 해 농구대잔치 개막 일주일 전에는 포장마차 술을 마시고 다시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 택시를 들이박고 도망을 치려다 따라온 택시기사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습니다. 이때 허재는 공소 사실을 모두 시인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석방이 되었는데 보석으로 풀려난 지 하루 만에 또다시 무면허 사고를 낸 그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연을 선고받으며 대중들에게 엄청난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몇 건의 음주사건이 있었는데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절제가 안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가기 들기도 합니다. 아마 당시네 윤창호법이 시행되었더라면 허재는 아마 30년은 감옥에서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대중들의 사랑도 많이 받은 만큼 좋은 곳에서 활약해 주기를 바라며 좋은 내용을 기사들로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년의 '농구대통령'이었던 허재, 이제 '기부대통령'이나 '선행대통령'으로 불리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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