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한일전 '4 : 13 도쿄대참사' 정말 이번 WBC 한일전은 어느 때보다 참담함을 느낀 경기였습니다. 사실 야구란 스포츠는 절대적 우위를 갖고 가는 것 이 불가능한 스포츠입니다. 전승 우승 이런 건 꿈도 꿀 수 없고 축구나 농구처럼 최고의 팀이 승률 80% 이상을 보여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최하위 팀이라도 승률 30 퍼센트는 유지하는 게 바로 야구라는 스포츠죠. 그만큼 업셋이 정말 많이 나오는 스포츠이고 팬들이 업셋으로 인해 일희일비를 많이 하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승률이 가능한 이유는 야구는 확률 싸움이면서 투수 싸움이기 때문이죠. 확률 싸움이란 부분은 타격을 말하는 건데 야구는 10번을 쳐서 세 번을 쳐도 아주 잘하는 타자로 쳐주는 만큼 기본적으로 실패를 베이스로 깔고 가는 스포츠입니다. 그렇다 보니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려줄 수 있는 타자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요. 김하성 선수나 김연수 선수 톰 에드먼 선수 등이 타격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 것도 사실 이 확률이란 부분에 속해 있습니다.
타격 사이클이 좋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야구니까요? 이런 걸 확률적으로 잘 조절하고 선택하는 게 감독의 몫이고 야구 감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번 WBC에서는 몇몇 선수가 땅 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뽑는 능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주 전 7 득점, 일본 전에선 4 득점 그중에서도 메이저 16승인 다르빗슈에게 3점을 뽑는 등 타격은 해줄 만큼 해줬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발린 이유가 뭘까?'라고 본다면 역시 야구는 투수 놀음이기 때문입니다.
타격의 확률은 투수와 타자의 합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아무리 좋은 타자 좋은 타순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투수 앞에서는 점수를 쉽게 뽑아내지 못합니다. 안타를 만들어낼 확률이 극도로 낮아지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한국야구의 퇴보는 바로 이 투수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첫 번째 바로 재구와 구속입니다. 호주전 사사구 8개, 일본전 사사구 9개, 두 게임 21 실점 17개 사사구로 사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투수들이 해서는 안 되는 점수이고 사사 구 개수입니다.
안타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스트라이크를 던지다가 홈런을 맞는 건 내가 원하는 공을 던지다 안타를 맞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이 볼, 볼, 볼, 볼은 정말 아니라고 볼 수 있죠. 야구를 많이 보신 분들은 대충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마운드 위에 서 있는 투수가 타자를 씹어 먹을 생각을 갖고 있는지 쫄아서 자기 공을 던지지도 못하는지 말이죠. 일본전이 딱 그랬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공을 믿고 던지지 못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나마 박세영 선수나 원태인 선수를 제외하곤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공인구가 매끄럽고 실밥이 작다.' 그런 핑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 같은 조건이니 말이죠. 모든 투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볼넷보다 안타가 났다. 초구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렇지 못했습니다. 도망가는 피칭을 하기 바빴고 자신 있는 피칭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투수가 갖춰야 하는 것은 디셉션이나 익스텐션이나 오버 핸드나 언더 핸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공을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던질 수 있는가이죠. 하지만 이번 경기는 확실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구속과 결정구입니다. 메이저는 구속 혁명 이후 평균 구속이 153킬로미터입니다. 메이저리그의 15년 전 평균 구속은 148킬로미터였으니 무려 5킬로미터의 상승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1군 리그 평균 구속은 148에서 149킬로미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국가대표 선수들은 나오는 투수마다 150은 그냥 찍고 들어갑니다. 아닌 선수가 없더군요. 오타니, 사사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에 던진 다카하시 같은 경우엔 160킬로미터를 밥 먹듯이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한국도 구속 상승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2022년 한국 1군 평균 페스트 볼 구속은 144킬로미터로 지난 15년에 비해 5킬로미터 이상의 상승을 일으켰죠. 하지만 이는 외국인 투수의 영향이 큽니다. 한국인 투수로만 본다면 150 이상을 던지는 선발투수는 안우진 선수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죠. 이렇게 투수의 기본이 될 수 있는 페스트 볼이 밑바탕이 되어 주지 못하니 카운트를 쉽게 잡아가질 못하고 소극적 피칭을 하게 되고 볼 개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투수에게 필수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위닝볼(결정구)이 약하다는 겁니다. 김광현의 슬라이더, 류현진의 체인지업, 오타니 선수의 슬라이더처럼 언제든지 삼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윈닝구가 약하니 결국은 볼넷을 주든 한가운데 넣어 맞아 나가는 것밖에 안 되는 거죠. 정말 갈 길이 멉니다. 구속도 올려야 하고 윈닝구도 잘 다듬어야 하죠. 하지만 잘 기억해야 하는 건 어쩌면 류현진 선수일 겁니다.
미국에서도 최고의 투수 자리까지 올라간 류현진 선수는 결코 빠른 볼로 올라간 게 아닙니다.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 평균 구속도 던지지 못하지만 사이영상 2위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재구력과 로케이션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죠. 모든 선수가 160 킬로미터를 던질 수는 없습니다. 150킬로미터 이상의 빠른 공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던질 수 있는 영역이죠.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장점을 더욱 연마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추신수 선수가 말 것처럼 스스로가 야구 제일 잘하는 것 같은 생각으로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안일함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더욱 자신을 갖고 닦아야 할 겁니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입니다. 자신만의 장점이 있어야 상대가 오타니든 트라웃이든 상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이번 WBC도쿄대참사를 뼈저리게 가슴에 새기고 국내 선수들이 더 높은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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