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탐구생활

출산 후 사망률이 높았던 '산욕열' 원인은??

by 웅탐 2022. 12. 12.
728x90

손씨기 얼마나 중요한가?

인간의 수명을 늘린 의사
안전한 출산에 기여한 제멜바이스
많은 질병을 예방하는 손씻기

 

손씻기
▲ 손씻기만 잘해도 건강의 반을 지킬수 있다.

여러분은 손 자주 씻으시나요? 언제부터 이렇게 손 씻기를 강조했을까요?

병원에 가면 많은 의료진들이 수시로 손을 씻으러 다니는데 과연 손을 씻어야 한다고 생각한 게 된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19세기 이후? 미생물 발견되고 '손에 묻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전파를 할 수 있다.'라는 개념이 생기고 난 뒤 손을 씻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시기는 놀랍게도 미생물의 발견 전입니다. 인간의 많은 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늘려준 손 씻기. 이 것은 아주 실험적인 의사의 집요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세워진 종합병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제프 2 세는 18세기 후반의 절대군주였습니다. 황제는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에 큰 종합병원을 세우게 되는데 큰 종합병원인 만큼 당대 최고의 의사들을 불러서 국민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종합 병원이다 보니 당연히 산부인과도 존재했었고 당시 산부인과 의사로 제일 유명한 루카스 요한 보어 박사도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황제의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엘리자베트 공주의 출산을 도왔으나 이틀 만에 산욕열로 사망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산욕열이 뭘까요? 보통 출산 이후에 열이 나면서 감염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당시에는 '출산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당시 산욕열은 산모에게는 피할 수 운명과 같은 병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애를 낳으면 열이 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중에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감염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감염 때문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믿었다고 합니다.

 

반응형

산욕열의 원인을 몰랐던 시기

시대가 조금 더 흘러서 산업혁명 일어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 잘 살게 됐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생겨난 어마어마한 부는 대부분 귀족들과 부유층만의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의사를 집으로 불러서  진료를 받고 출산도 집에서 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엄청 떨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벗어나니까 100명당 한 명만 사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은 종합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병원에는 항상 사람이 계속 몰려 산부인과 병동이 두 개나 되었습니다. 1 병동과 2 병동이 있었는데 이 두 병동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 환자들은 1 병동에 입원하기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1 병동이 2 병동에 비해 사망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결과를 약간 징크스 같은 걸로 생각했습니다.

 

의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1 병동은 많이 죽고 2 병동은 안 죽는데 이유가 뭘까 하면서 의사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병원은 1 병동만 우연히 아픈 사람들이 갔거나 그런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며 의사들의 여러 가지 의견들은 계속 무시하게 됩니다. 다른 병원이 똑같이 많이 죽어. 원래 병원은 많이 죽어 아픈 사람이 오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어 라며 계속 안일하게 대처를 합니다.

 

산욕열
▲ 18세기 산모들의 산욕열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제멜바이스의 관찰과 기록

그러다 어느 날 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 제멜바이스라는 엄청 젊은 보조 지망자가 들어오게 되는데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보수도 없이 일을 했지만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를 기록하면서 지냈는데 그의 기록에 남은 산부인과의 묘사는 한 병실에 20명씩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 병동에 80명, 2 병동에 80명 총 160명이 입원하는 초거대 산부인과 병동이 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사회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도시 빈민층이 늘어나고 있을 때라 연예 중에 덜컥 임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처지와 생활고를 비관하여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도 창문이 있긴 했지만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이 병원은 사람들을 많이 배려하는 곳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는데 실상은 창문이 열지 못하는 곳에 있다 보니 환기는 전혀 안 되는 병균이 가득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감명받은 것이 있는데 병동 바로 옆에 해부실이 있습니다. 해부 실습실에서는 산욕열로 죽은 산모들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거기서 해부를 했다고 합니다. 죽은 산모를 해부하면서 연구를 하다가 출산을 해야 하는 산모들이 오면 바로 뛰어가서 산모의 출산을 도운 것입니다. 

 

지금 의학으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는 상당히 업무 환경이 좋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언제든 연구와 일을 거의 동시에 할 수 있으니까 다들 이병원이 최고의 병원이라고 만족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의사들이 종합병원에 만족하고 있을 때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는 산욕열의 경과를 지켜보며 묘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배를 만지면은 반응을 하는데
시간이 지나 너무 아프니까 환자가 자지러지다가
열이 더 오르면 이제 그때부터 통증에 반응을 하지 않고
혼수상태가 되어서 사망을 합니다.

반응형

병원에서도 유능한 의사들을 동원해 원인을 찾기 위해 사망한 산모를 해부해 열어보면은 일단 복부에 너무 심각한 염증이 있고 복강에는 고름과 종기가 엉겨 있고 간혹 복부와 떨어져 있는 장기인 뇌나 가슴 같은 곳에도 염증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소염증이란 패혈증이 발생한 건데 그때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으니 우주의 영향이나 땅의 기운 같은 영향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병원이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의견이 아닌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던 제멜바이스는 그때부터 약간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휴직 신청을 합니다.

 

그렇게 얼마간 휴식을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왔을 때 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 의사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친구 의사는 부검을 했었는데 조수가 들고 있던 칼로 그의 검지를 실수로 베고 말았고 친구 의사는 산욕열 환자의 경과랑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가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제멜바이스-손씻기
▲ 손씻기의 중요성을 알린 의사 '제멜바이스'

보이지 않는 병균의 전파

칼로 벤 상처가 배에서 시작한 것과 검지에서 시작한 것만 차이가 있고 모든 것들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멜바이스가 시신에 어떤 입자가 있고 그게 환자나 산모들에게 들어오면은 사람이 죽게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멜바이스는 그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였구나. 지금까지 이 환자들을 우리가 죽였구나.' 제멜바이스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다가 스승님한테 가서 해부실에서 시신에 어떤 입자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 같다고 말하게 됩니다.

 

제멜바이스는 스승에게 부검을 하고 나면은 손을 씻고 환자 검진을 해야 된다고 전하며 여러 가지 의견들을 제시하게 됩니다. 스승 역시 그의 의견이 그럴싸하다고 생각되어 손 씻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물로만 닦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독한 걸 찾습니다 바로 염화석회였는데 지금은 표백 재료로도 잘 쓰이지 않는 독한 재료였습니다.

 

냄새가 너무 심해 가지고 코가 얼얼할 정도이고 손을 씻으면 손이 빨개졌습니다. 세균들이 다 죽긴 하지만 피부도같이 죽기 때문에 쓰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천율도 떨어지고 반응도 좋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멜바이스가 그때 누구보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의사들을 쫒아다니며 손을 씻으라고 하고 염화석회를 손에 부어줬다고 합니다. 

 

728x90

손씻기의 효과

손 씻기는 4월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18%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 씻기가 더 활성화되면서 5월에는 12% 그리고 6월이 되니까 2%로, 그리고 7월에 1%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후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도 병균이 옮길 수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제멜바이스는 '환자를 봤으면 다른 환자를 보기 전에 염화 석회에 손을 넣고 그다음에 진료를 봐야 된다.'라며 최초의 손 씻기 지침을 만들게 됩니다.

 

이 당시 런던 상황을 보면 런던은 더 심해서 산모의 절반이 출산 중 죽었다고 합니다. 런던 빈민가에 있던 병원은 입원하면 그냥 죽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출산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산모들은 많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집요한 관심과 관찰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제멜바이스의 지침이 만들어져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한 번쯤 고맙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