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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브랜드 1위, 나이키(NIKE) 이야기

by 웅탐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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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do it - NIKE

 

승리의 여신 'NIKE'
Just do it! - 그냥 해 봐!
마이클 조던 - 에어조던 원
끊임없는 발전으로 하나의 문화로 존재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탄생, 성장, 논란 등 나이키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 나이키 매장은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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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탄생

1957년 육상 선수였던 필라이트는 오리곤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코치 빌 바우어만을 만납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 관심사가 있었는데요. 바로 운동화입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것은 독일이었습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1964년 1월 25일 각각 500달러를 투자하여 회사를 세우는데 이것이 바로 블루리본 스포츠 나이키의 전신입니다. 이들은 일본에 있던 오니츠카 타이거 지금의 아식스로부터 신발 200 켤레를 들여와서 미국 내에서 팔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해마다 매출이 증가했고 1969년에 3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됩니다.

 

나이키의 변화

잘 나가던 블루리본 스포츠에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의 오니치카 타이거와 블루리본 스포츠가 관계가 점점 악화되다가 1971년 더 이상 신발을 주지 않습니다. 창업주였던 필라이트는 자체적으로 신발을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그 시기 회사의 이름도 바꾸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이키. 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영어식 발음입니다.

 

필라이트는 나이키의 로고 디자인을 위해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그래픽 디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을 만납니다. 필라이트는 단순하고 부드럽고 동적인 느낌이 전달되지만 아디다스와는 전혀 다른 로고를 원합니다. 의뢰를 받은 캐롤린 데이비스는 육상 트랙의 코너를 생각하더니, 지금의 스우시(Swoosh) 로고를 만들어 내는데요. 그런데 이 로고가 단돈 35달러에 만들어집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단가는 아니었고 시급 이 달러로 계산했는데 17시간 30분 동안 만들어 35달러가 됩니다. 필라이트가 완성된 로고를 보더니,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고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포츠는 나이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후 나이키가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가 되면서 필라이트는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나이키의 성장과 제품들

어느 날 공동창업주 빌 바우어만이 와플 굽는 기계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무 스파이크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운동화 밑창에 부착해 미끄럼을 방지하는 데 탁월했는데요. 가벼우면서도 마찰력이 강해 운동화의 기능을 상당히 높였습니다. 빌 바우어만은 와플 기계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와플 솔(Waffle Sole)'이라고 불렀습니다. 1972년 와플 솔 기술로 신발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나이키 최초의 운동화 바로 '코르테즈'입니다.

포레스트컴프-코르테즈
▲ 영화 '포레스트 컴프'에 등장한 나이키 코르테즈

빌 바우어만은 코르테즈를 스폰할 선수를 찾았는데요. 자신의 제자이자 장거리 육상 경기 7 종목에서 미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스티브 프리 포테인'에게 후원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로써 나이키 최초의 스타 마케팅이 시작됩니다. 이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는데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아주 큰 홍보 효과가 됩니다.

 

1979년에는 미국 항공 우주국의 직원이던 플랭크 루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하더니, 외부 압력에도 원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기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이키의 핵심 기술인 에어 쿠셔닝 기술, 이 에어 쿠셔닝과 와플 솔로 신발을 만들게 되는데요. 나이키 최초의 마라톤화 '테일 윈드'가 탄생합니다.

 

1970년 대 미국의 조깅 열풍이 불어옵니다. 당시 스포츠 브랜드 선두주자였던 아디다스가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이를 대수롭게 여기는데 이와 나이키는 운동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중의 호응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더니, 이내 아디다스를 앞지르고 스포츠 브랜드의 선두주자가 됩니다.

 

1982년에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담긴 최초의 농구화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에어포스 원', 이 에어포스 원은 기능성으로 현재는 스트릿 패션의 대명사 특히 힙합 패션에 큰 혁명을 가져오면서 지금까지 아주 오랜 기간 사랑을 받게 됩니다.

에어포스1
▲ 최초 에어포스 1은 농구화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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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위기

1980년대 중반 미국에는 에어로빅 열풍이 불어옵니다. 이때 나이키는 아줌마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것은 피트니스이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아디다스처럼 입장 대응을 하게 되는데요. 가벼운 피트니스화를 출시한 리복에게 선두 자리를 뺏기게 됩니다. 이의 나이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 신인 농구선수와 후원 계약을 하는데요. 선수가 바로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었습니다.

 

1985년에는 마이클 조던을 위해 신발을 개발하는데요. 바로 '에어 조던 1' 마이클 조던은 에어조던 1을 신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게 되고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에어조던 운동화에 뻑 가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키 매출은 당연히 쭉쭉 쭉 올라가게 되죠. 이후 나이키 산하의 독립 브랜드로 떨어져 나왔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에어조던 시리즈가 발매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에어조던1
▲ 농구의 황제로 등극한 '마이클 조던'으로 인해 에어조던 시리즈는 최고의 신발이 되었다.

마이크 조던과의 협업으로 에어 조던 시리즈가 대박 난 뒤 계속해서 각 분야 스타들과 협업을 했는데요.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많은 스타들의 라인을 론칭했습니다.

 

just do it -  일단 해 봐

1988년 필라이트가 나의 키를 좀 더 널리 알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위든 앤드 케네디라는 광고 회사에 광고를 의뢰하는데요. 광고 회사에 대표였던 위든이 나이키 광고를 고민하던 중에 한 살인자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개리 길모어라고 하는 살인자가 있었는데, 1976년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이유 없이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사형은 10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었는데요.

 

개리 길모어는 총살형을 원했습니다. 결국 사형을 집행하게 되는데 사형 집행 의자에 앉은 길모어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Let's do it' 이 사형은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말 또한 유명해집니다. 심지어 티셔츠도 만들어졌는데요. 광고쟁이 었던 위드는 이 유명한 말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대로 쓰기는 찝찝하고 단어 하나를 바꾸는데 그것이 바로 'Just do it - 일단 해 봐' 이 말은 나이와 성별 건강 상태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육체적 정신적 동기를 부각하기에 충분했는데 소비자들로 하여금 엄청난 호응을 얻고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나이키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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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논란

오랜 기간 사랑을 받으며 여러 시리즈를 발매한 에어조던 그런데 에어조던 12가 출시된 뒤 국내에서 큰 논란을 얻게 됩니다. 1996년 특유의 햇살 무늬 디자인으로 발매되는데 사람들은 "이거 욱일기를 모델로 삼은 거 아니야?" 라며 선뜻 구매해서 신는 것을 찝찝해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2009년 배짱 좋게 신발 밑창에 대놓고 욱일기 디자인을 넣은 라이징 썬 모델을 출시합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심히 화를 내게 되고 나이키 불매 운동이 시작됩니다. 심각성을 깨달은 나이키는 바로 꼬리를 내리면서 국내에서는 해당 디자인을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이키-욱일기
▲ 논란이 된 나이키 욱일기 디자인

 

나이키가 나아가는 길

2018년은 'Just Do It'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념하려고 광고 캠페인을 만들었데 광고모델로 등장한 인물이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모델은 바로 당시 미국 사회의 논란이 되고 있던 전직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었습니다. 콜린 캐퍼닉은 2016년 8월 경기에서 미국의 국가가 퍼질 때 일어서기를 거부하고 무릎을 꿇었는데요. 이것은 당시 미국에서 흑인이 백인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자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를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콜린케퍼닉-나이키
▲ 콜린 케퍼닉(우)은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로 미국 국가가 나오는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 출처 NBC News

이후 선수들 간의 무릎 꿇기 저항이 점차 늘어나게 되는데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정말 화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키는 콜링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결정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나이키는 '무엇을 생각하나?'라고 했으며 소셜미디어상에서는 나이키 불매 운동뿐 아니라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들도 등장하게 됩니다.

 

CNN은 나이키가 도박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이키는 분노하는 백인 중장년층을 잃을 수 있지만 미래 소비층인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보이콧에 나이키의 주가가 잠시 하락하더니, 곧 다시 회복되었는데요. 현재는 상승세에 있으며 판매량도 광고 전보다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상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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