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탐구생활

대한민국 술과 막걸리 이야기 (with 박정희 대통령)

by 웅탐 2023. 4. 17.
728x90

사진: Unsplash 의 Javier Esteban

우리가 막걸리의 역사를 살펴볼 때 빼놓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인데요.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를 너무나 사랑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반대로 막걸리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바로 1965년 시행된 양곡 관리법 때문입니다. 당시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박정희 정부는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먹고 죽을 쌀도 없는데 술까지 만들면 쌀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술을 만들 때 쌀이 정말 많이 들어갑니다. 보통 양조장에서는 쌀을 적게는 수백 킬로 많게는 수천 킬로까지 소비합니다. 쌀 100킬로그램은 성인 1000명이 먹을 양이니 술에 쌀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 셈입니다. 이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술에 관한 실시한 정책은 아직까지 우리의 술소비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은 뭐 워낙에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던 그는 막걸리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고 하며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막걸리에 관하 에피소드가 유독 많습니다. 대통령 기록실의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 보좌관들은 막걸리 통만 보면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보좌관들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 어김없이 막걸리를 마셔야 했고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 막걸리를 좋아했던 박정희 대통령

또 요즘에 출시된 '막사'의 시초도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털털한 막걸리에 달달하고 청량한 사이다를 섞어서 벌컥벌컥 마셨다는데요. 저녁 술자리에서 '시바스 리갈' 한잔하고 막사로 입가심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막걸리 사이다를 타먹는 것도 오늘 알아볼 양곡관리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술들은 오래전부터 주로 쌀로 만들어졌습니다. 소주 청주 막걸리 모두 주원료는 쌀입니다. 이 술을 모두 금지시키는 것은 사실상 우리나라 전통술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잠깐 소주 얘기를 해볼까요? 우리나라 소주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참이슬, 처음처럼은 모두 희석식 소주입니다. 고구마와 비슷한 타피오카 같은 저렴한 전분질 재료를 커다란 증류기에 넣고 알코올도수 90% 이상으로 뽑아낸 것을 주정이라고 합니다.

 

▲ 국내 양조장

이 주정에 물을 섞어서 소독용 알코올이나 손 소독제 등에 활용하기도 하고,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주정에 물을 섞어서 도수를 낮추고 인공 감미료를 넣어서 쓴맛을 감춘 것이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 소주입니다. 그럼 이 희석식 소주는 언제부터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냐? 바로 이 양국관리법 시행 이후입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주로 팔리던 소주는 증류식 소주였는데 이 증류식 소주는 100프로 쌀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쌀을 발효시킨 후에 증류기에 넣고 알코올 도수 50 도 정도로 증류한 다음 여기에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어 술로 마시는 형태입니다. 요즘에 나오는 원 소주, 일품 진로, 안동 소주 같은 술들이 대표적인 증류식 소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쌀로 술을 만드는 걸 금지했고 그래서 쌀로 술을 만드는 증류식 소주 업체는 완전히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이 소주 업체들은 버티다가 1976년 사실상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사이에 쌀이 안 들어간 저렴한 희석식 소주는 날개를 달고 우리나라 국민 소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때 이후로 전통주는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들다 1988년 88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금 부활의 움직임을 가져가기 시작합니다. 올림픽 때 여러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주를 소개하고 싶어서 부랴부랴 사라진 증류식 소주를 다시 살리려고 했던 것이죠. 그때부터 안동 소주, 문배주, 이강주 등 이때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다시 막걸리로 돌아가서 막걸리의 경우도 거의 100% 쌀로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 법으로 통제하며 못 만들게 하니까 선택한 것이 바로 밀입니다. 밀 막걸리는 쌀 막걸리에 비해 질감이 거칠고 맛이 좀 더 꽉 차 있는 느낌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슈퍼에 가셔서 지평 쌀 막걸리와 밀 막걸리 한 병씩 사서 비교 시험해 보세요. 아마 밀 막걸리의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728x90

좋게 말하면 발의감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텁텁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가끔 옛날에 마시던 바디감이 꽉 차고 풍부한 밀 막걸리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밀 막걸리에 익숙해질 때쯤 1976년 쌀 생산량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도 식량 자급에 성공하게 되고 쌀이 남아돌게 됩니다. 그래서 1977년 14년 만에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이 해제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쌀 막걸리가 생산되기 시작하는데요.

 

쌀 막걸리는 밀 막걸리에 비해 맛이 라이트하고 깔끔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밀 막걸리를 주로 마시다가 이 쌀 막걸리를 마시니까 맛이 예전 같지가 않고 너무 밍밍하다면서 막걸리에 타기 시작한 게 사이다입니다. 사실 사이다뿐만 아니라 맥주도 타 마셨다고 하는데요. 이걸 맥탁이라고 부르곤 했답니다. 그러니까 밀 막걸리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에 쌀 막걸리가 좀 밍밍하게 느껴졌고 요것을 좀 보완하고자 여기다가 사이다를 타서 마시기 시작한 거죠.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막걸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생산되는 배다리 막걸리입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과 주말마다 한양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고 돌아가던 길에 막걸리나 마시러 가자고 현재의 삼송동인 삼송리의 한 실비집으로 찾아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처음 배다리 막걸리를 마시고 맛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 배다리 막걸리

나중에 청와대 직원이 술도가를 찾아와서 "각하가 당신네 막걸리가 맛있다고 하니 매주 갖다 달라."라고 요청하게 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본격적인 배다리 막걸리 사랑이 시작됩니다. 재밌는 건 배다리 막걸리는 쌀 막걸리입니다. 근데 대통령이 쌀로 술을 만드는 걸 금지시켰다고 했죠. 그런데 대통령이 맛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몰래 쌀로 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발효실을 따로 만들어서 열쇠를 걸어서 고향 경찰서 정보과장이 관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경찰이 술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니까. 한여름에 술이 완전히 쉬워서 못 먹게 되죠. 그래서 이 발효실 열쇠를 양조장 사장님에게 도로 주고 술을 맛있게 만들라고 관리시켰다고 합니다. 대통령께서 몰래 쌀로 막걸리를 만들어서 밀주를 마셨던 셈이었던 거죠.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을 순시할 때도 아이스박스에다가 배다리 막걸리를 채워서 다녔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바로 금정산성 누룩입니다. 부산의 금정산성 마을은 500년 가까이 대대로 누룩을 만들어 팔던 고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순간에 누룩을 만들지 말라고 하니까 생계가 끊겨버립니다. 평생 누룩만 만들었는데 갑자기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그래서 몰래몰래 누룩을 만들어서 타지에 나가서 팔았다고 합니다. 단속이 나오면 누룩을 들고 도망치기도 하고, 또 잡혀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면서 마을 분들이 정말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셨다고 합니다.

 

▲  금정산성 막걸리

금정산 속의 누룩에 살아있는 역사 전남순 할머니의 신문 기사 인터뷰에 따르면 금정산성 동문 앞에 주막집을 하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지나가다가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됐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너무 맛있어서 이거는 뭘로 만든 막걸리냐고 물으니까 그 집 할머니가 이건 우리가 만든 우리 누룩으로 담근 술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 좋은 전통주를 없애면 되겠느냐?"라고 말하고 몰래몰래 금정산성 마을의 뒤를 봐줬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먹던 동문 할머니 막걸리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비밀리에 말통으로 사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발효제인 누룩의 생산을 금지시키면서 일본식 발효제인 입국이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하고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막걸리에도 이 입국이 사용됩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장수, 지평, 이동 막걸리 등등 거의 모두 입국을 사용합니다. 값싸고 발효 효율도 좋은 입국이 도입되다 보니 누룩은 그동안 명맥만 겨우겨우 간신히 유지하다가 최근에 프리미엄 막걸리가 유행하면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양곡관리법이 시행된 이후 14년간 쌀로 술을 못 만들게 되면서 많은 전통주 양조장들이 문을 닫게 되고 대기업이 대량으로 만들 값싼 술이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4년이란 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이 사건으로 6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전통주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고 많은 업체들이 굉장히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엔 누룩으로 만든 우리나라 전통 막걸리 한잔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시큼털털한 금정산성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를 정리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