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보초 참다랑어 해체하기
내 안주 어디 갔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쉬다가 잠들기 전 추석에 받아온 정종이 생각이 났습니다. (퇴근 후 한잔은 우리 삶의 낙이죠.) 냉동실에 살포시 넣어둔 나의 문어를 생각하며 술을 따르고 냉장고 냉동실을 열었는데 봉지에 곱게 넣어 둔 문어가 보이지 않았길래 냉동실과 냉장실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저를 보더니 뭘 찾는지 묻었고 문어를 찾는다고 하니 "어제 애들 다 썰어줬는데."라고 하더군요. 서운한 마음에 말없이 화장실로 가서 양치 후 침대에 누워서 잤습니다.
다음날 출근 후 업무를 보고 있는데 운명 같은 한통의 카톡이 왔습니다. '카톡~!"
아침 참다랑어 소식에 뛰었다는 '세젤싸' 사장님의 유머러스한 카톡을 읽으며 저는 신이 났습니다.
술안주로 최고라 할 수 있는 참다랑어 한마리 32900원 무료배송까지. 정확한 참다랑어 시세는 잘 모르지만 횟집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싸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이건 사야 된다' 싶어 와이프 한데 연락을 하고 구매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안주는 와이프 돈으로 사야 제맛입니다. 어제 내 뒷모습을 보고 뭔가 미안했는지 흔쾌히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택배기사님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띠링~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참다랑어 도착
어제 늦게 잠을 잔 탓에 눈이 퉁퉁부어있었고 떡진 머리에 가르마가 제멋대로 타진 상태지만 신이 난 얼굴로 현관을 열고 나가보니 하얗고 영롱한 스티로폼 박스에 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한낮인데 벌써부터 술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요?
안에 참다랑어뿐만 아니라 얼음도 들어가 있다보니 무게가 좀 나갔습니다. 그래도 기쁜 마음에 신나게 안고 집으로 들어와 주방 테이블에 박스를 올리고 바로 칼을 가져와서 천천히 포장 테이프를 제거하였습니다. 포장 덮개를 열자 생선 냄새가 살짝 풍겼습니다. 참다랑어는 두꺼운 비닐로 2중 포장되어 있었고 사장님 말씀대로 아가미와 내장이 모두 제거된 채로 두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었습니다.
참다랑어 해체시작
예전에 친구들과 바다낚시를 몇 번 가게 되면서 회 뜨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조금 배우고 또 유튜버 분들 가르침을 영상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게 다라서 이 큰걸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조금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물건은 확인을 했으니 작업 전 당황하지 않게 다시 유튜브를 켜 놓고 참다랑어 해체 영상을 몇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해 놓자는 생각에 해체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생선을 만지다 보면 미끄럽기 때문에 베란다로 가서 캠핑용품들 사이에 있는 한 무더기의 목장갑 중 하나를 빼서 왼쪽에 끼고 주방으로 가서 칼도 갈고 도마도 준비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들어보면 생물이라 그런지 확실히 무게가 좀 나갔습니다. 일단 머리와 몸통부터 분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유튜브에 나오는 대로 칼질을 해서 잘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툰 솜씨지만 요령껏 뼈들 사이를 비켜가며 참다랑어의 속살을 발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초보자이다 보니 칼질도 서툴고 살도 깨끗하게 발라내지 못했습니다. 엉성하게 자르다 보니 여기저기 자투리로 떨어진 생선 살점들로 가득했다. 나중에 김치찌개에 넣어 먹거나 구워 먹으면 되기 때문에 자투리 부분과 혈압육(피가 고인 자리) 부분을 모두 따로 모아 두었습니다. 해체를 하다 보면 혈압육에서 묻은 피들이 깨끗한 부분에 묻을 수가 있기 때문에 적절히 칼을 닦아가며 사용했습니다. (피가 묻으면 아무래도 비린 맛이 날 수 있으니 수시로 닦았습니다.)
다 발라낸 살점들은 다시 먹기 좋은 덩어리로 썰어 저녁에 먹기 위해 냉장 보관했습니다. 원래 숙성지 같은 게 따로 있어서 그런 종이로 싼 다음 랩으로 공기 없이 포장해서 보관하는 게 일반적인데 집에 숙성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집에 있던 '종이 호일'을 이용해서 싼 다음 지퍼팩에 넣어 냉장 보관하였습니다.
보관하기 전에 몇 점을 썰어서 먹어보았는데 생 참다랑어라 그런지 유튜브에서 나온 것처럼 약간의 산미가 있었고 끝 맛에 쇠맛(?)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몇 시간 숙성하면 괜찮아진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맛이 나쁘거나 이상한 건 아니라 먹는데 문제는 없었고 특히 간장을 찍어 고추냉이를 올리면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투리 부분과 혈압육을 따로 포장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먹을 때마다 꺼내서 끓이거나 구워서 먹으면 되기 때문에 덩어리채로 나눠 담아 넣어 두었습니다. 넣기 전에 한 덩이 빼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바질가루를 살짝 뿌려 구워보았습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맛있게 익혀지고 있었습니다. 다 구웠다 싶어 접시에 담아 조금씩 먹어보았는데 제 입에는 거짓 없이 명절 제사 때 굽는 소고기 육전 맛이 났습니다. 와이프는 고등어 맛이 난다고 했지만 저는 확실히 소고기 맛이 났습니다. 저희 둘째도 먹어보고 같은 반응이었는데 확실히 소고기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참다랑어 회와 함께 술을 한잔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저렴하게 구입해서 가족들과 맛있게 드셔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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