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휴일이지만 추석 하루 전이라 할 일은 많은 날이라 아침에 일어나 일정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나는 식구들에게 각자 개인 물품을 챙겨서 시골(부모님 댁)에 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식구들은 각자 갈아입을 여벌 옷과 세면도구 및 휴대폰과 충전기 등을 챙겼고 나도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하루 동안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문단속도 하고 집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도 넉넉히 주었다.
준비가 끝난 우리는 우선 집 근처 홈플러스에 가기로 했다. 매년 명절이 되면 제사를 지내러 오시는 친척 어른들께 가벼운 선물을 하나씩 드리는데 올해도 선물을 드려야 한다는 와이프의 뜻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명절 연휴다 보니 마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물세트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둘러보며 필요한 것들을 둘러보았다. 최근 물가가 올라서 그런지 확실히 가격도 많이 오르고 비싼 가격들 때문인지 손에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것저것 물건을 따져보다가 적당한 선물을 먼저 사고 오늘 제사 음식 장만이 끝나면 마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고기라도 구워 먹자며 돼지고기도 넉넉하게 바구니에 담았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차가 막히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출출할 수도 있으니 햄버거도 하나씩 사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물건들을 차에 싣고 곧장 고속도로로 향했다. 평소보다 차가 조금 많아 보였지만 별 무리 없이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나는 보통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금호분기점을 이용하고 있다. 금호분기점은 주말이나 공휴일, 명절이 되면 항상 톨게이트 입구부터 상행과 하행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상습정체 구간이었다. 이유는 하행선으로 진입하는 차들이 많은데 차선이 하나다 보니 뒤엉키면서 양쪽 모두 정체가 되는 꼴이었다. 하지만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공사를 한 후 차선을 하행선 차선을 늘리면서 이번 명절은 전혀 막힘 없이 시원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도 속도를 조금 줄이는 지점은 있었지만 크게 막히는 곳이 없어서 우리는 편하게 목적지 인근 ic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날씨가 완전 '가을 가을'한 하늘을 보면서 음악과 함께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주위에 무럭무럭 익어가는 벼들을 보며 며칠 전 올라온 태풍 '힌남노'가 다행히 이곳에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간 듯하여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분들이 많은 도움을 받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모든 일의 만능이 되자.
오후 1시 30분. 집에 도착을 하니 인천에서 출발한 동생네 식구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전날 전화가 온 동생은 아직 백일이 되지 않은 조카가 동행하는 첫 장거리 외출이라 고속도로에서 정체가 되면 난감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며 새벽 4시에 출발을 한다고 했었다. 방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조카를 보며 동생에게 몇 시에 도착을 했냐고 물으니 20분 전에 도착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동생은 한숨과 함께 힘들었다는 표정을 하며 총 9시간을 운전했다고 했다. 인천에서 부모님 댁까지 차가 밀리지 않으면 2시간 30분 거리인데 무려 4배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다행히 조카가 차에서 많이 칭얼거리지 않고 잘 자줘서 운전 말고는 특별히 힘든 건 없다고 했다. 나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을 운전한 적이 없다. 허리도 아프거니와 5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면 차라리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날짜를 변경하는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그랬냐고 물으니 나에게 보라는 듯이 손가락을 방 쪽으로 가리켰다.
방안에는 무슨 짐인지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모두 조카 물건들이었다. 무슨 살림살이를 옮겨놓은 듯이 엄청난 짐을 차에 싣고 내려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내려온 것이었다. 스스로를 '딸바보'를 뛰어넘는 신의 경지에 오를 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딸 오를 등, 믿을 신'으로 표현할 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는 있었다.
조카가 깨기 전 음식을 준비하자며 거실에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장비들이 세팅되었다. 각종 전과 부침개를 하기 위해서 두 개의 대형 전기팬이 준비되었고 어머니는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와 장독대 옆에 설치된 대형 가마솥에 음식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남자들은 부족한 재료를 가져다주거나 요리된 음식이 쟁반에 쌓이면 보관장소로 옮기는 일을 도왔다.
음식 준비를 하면서 못생긴 음식이나 부서진 부침개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음식을 만드는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 오면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데 언젠가부터 이 일은 내가 담당을 하고 있었다. 모양이 못난 음식들을 따로 모아 접시에 썰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모두 달라 제사를 준비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우리 집은 예전부터 자유롭고 무리가 되지 않는 명절을 보내고자 하기 때문에 되도록 분담해서 일을 하고 남자들도 눈치껏 서로 도우며 명절을 보냈다.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일을 하던 중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나는 두 아이를 키워 본 경험자로써 조카 돌보미로 임무가 바뀌게 되었다.
손을 깨끗이 씻고 문을 열어보니 6월에 태어난 귀여운 나의 조카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앙증맞고 귀여웠다. 참 이상한 건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잘 몰랐는데 내가 이렇게 아기들을 좋아하는지 모를 만큼 너무 예뻐 보였다. 두 손으로 살포시 들어 가슴 쪽으로 안은 다음 몸에 반동을 주면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해 주었다.
조카는 금세 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낯선 풍경이 신기했는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다. 가끔씩 발을 움직이며 나의 배를 차기도 했는데 작은 발을 보니 귀여워서 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생을 닮아서 발가락이 유난히 길었는데 이것마저 너무 귀여웠다. 내 엄지손가락을 대어보니 얼마나 작은지 혼자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안아보는 작은 아기의 낯섦도 잠시. 나는 능숙하게 조카를 안아주었고 잠시 후 조카는 내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동생은 초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야의 고수라며 이제라도 늦둥이 하나 볼 생각이 없냐며 실없는 농담을 했다. 나의 능력이 빛을 발하자 능률은 올라갔고 우리는 그렇게 제사음식을 모두 준비할 수 있었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조카 사진이 대부분이어서 준비된 음식이 많았는데 사진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추석,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음식 준비가 끝나고 송편을 찾으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에 먹을 것도 조금 더 살 겸 와이프와 읍내에 있는 떡집을 갔다가 마트도 들르기로 했다. 평소 운전이 서툰 와이프는 오늘이 운전하기 좋은 날이라며 본인이 운전을 해보겠다고 했고 조금은 두렵고 걱정이 되었지만 우린 그렇게 음식 준비를 위해 갈아입었던 어머니의 작업복(몸빼)을 입고 떡집으로로 향했다.
아직 서툴기는 해도 차분하게 운전한 탓에 별 무리 없이 떡집에 도착했다. 떡집 안에는 떡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줄을 서 있다가 내 차례가 되자 어머니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송편을 찾았고 근처에 바로 큰 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차를 돌려 바로 마트로 갔다. 멋진 패션으로 마트에 들른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웃으며 마트로 들어갔다. 도시에서 태어나 우리 집에 시집온 지 어느덧 16년 차에 접어든 와이프는 이제 시골 옷을 입어도 나름 소화를 잘 시키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과 라면, 숯 등을 사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어 나는 도착하자마자 마당에 저녁을 먹을 자리를 마련했다. 창고에서 테이블과 의자들을 꺼내 놓았다. 저 테이블과 의자들은 모두 당근 마켓에 구매하 것들인데 나의 선택들이 지금 시골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퇴직 후 귀농하신 아버지의 친구분 들과 술자리를 할 때 하신다고 하니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사 온 숯에다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낮에 사 왔던 고기들을 꺼내 달궈진 불판 위에 올려두고 식구들을 불렀다. 와이프는 전을 부치고 남은 부추로 겉절이를 만들고 밭에서 따온 상추와 고추를 씻어 그릇에 담았다. 큰 대접에 밥을 퍼고 소금과 후추도 준비해서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마트에서 삼겹살을 살 때 육즙이 살아있는 고기를 먹자며 가장 두껍게 썰린 고기를 가져왔는데 역시나 두꺼운 고기가 맛있었다.
식구들이 많다 보니 고기를 빨리 구워야 해서 토치를 이용해 좀 더 빨리 고기를 굽기로 했다. 육즙이 가득 찬 불맛이 살아있는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다. 조금 늦게 익는 단점은 있지만 맛은 확실히 더 맛있었다. 아이들도 두꺼운 삼겹살이 맛있다는 의견이어서 다음부터는 무조건 두꺼운 삼겹살을 살 예정이다.
마당에 달린 큰 등에 불을 밝혔다. 둥글게 생긴 할로겐 등이라 전원을 켠 뒤 조금만 지나면 달처럼 둥근 밝은 빛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저녁 하늘 위에는 큰 달이 떠있었고 테이블에는 맛있는 삼겹살이 익어가고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시끌벅쩍하게 오늘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얘기하며 다 같이 웃음꽃을 피우며 저녁을 먹고 있는 추석 가족들은 기분 좋은 추억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었다.
하늘 위 밝은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숨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더위가 지나간 가을 하늘이 높아만 보였다. 우리 집 마당에도 둥근달이 두 개나 떠있는 탓에 저녁인데도 모든 것이 환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구름이 지나가자 환한 달이 둥근 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추석에는 달을 보고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나의 기도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매년 돌아오는 두 번의 명절 오늘처럼 언제나 가족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일상 탐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릎 통증 지나치면 안되는 이유. (물렁뼈/연골 파열) (0) | 2022.09.14 |
---|---|
제주도에서 꼭 가봐야 할 오마카세 맛집 (오마제주) (0) | 2022.09.10 |
태풍 11호 '힌남노'가 다가온다. (0) | 2022.09.05 |
오늘 소주가 생각난다면, 돈 튀기는 집 (아귀수육) (0) | 2022.09.04 |
탱글탱글 앞다리살로 김치찜 만들기 (0) | 2022.09.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