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 튀르키예(터키)와 한국
형제의 나라
우리나라와 터키는 왜 형제의 나라라고 칭할까요? 뜨거웠던 2002년 월드컵 터키와 대한민국이 만나 3,4위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응원단은 초대형 터키 국기를 내걸고 흔들었죠. 월드컵을 개최한 대한민국에서 상대편의 국기를 그것도 엄청난 크기로 제작되어 흔들어주는 이 모습이 터키를 포함한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고 이 정면을 바라본 터키 국민들은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록 경기 자체는 대한민국이 2:3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도 터키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관중석으로 인사를 하는 훈훈한 장면이 계속되었고 경기장에 가득 찬 관중들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양국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주며 화답했습니다.
터키의 11대 대통령인 압둘라 빌 대통령은 2010년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지난 2002년 월드컵 3, 4위 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준 터키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김새와 문화도 모두 다르고 심지어 광활한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위치한 두 국가를 우리는 왜 형제의 나라라고 할까요?
돌궐족
터키와 한국의 우호적 관계의 시작은 과거에서부터 볼 수 있는데요. 터키, 즉 투르크 민족은 우리나라에서는 돌궐로 불리는데 이 돌궐족은 몽골의 유목민족으로서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입니다. 특히 고구려 때는 돌궐과 연합하여 당나라와 싸우기도 했으며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혼인을 맺을 정도로 동맹 관계가 끈끈했다고 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돌궐인들은 민족 이동을 거치며 수많은 투르크 국가를 건설했고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투르크 계열 국가가 바로 터키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돌궐이라는 민족이 한국사책에서 짧게 언급만 되기 때문에 1400년 전의 동맹 관계가 뭐 그리 특별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터키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인 돌궐 역사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며 민족의 근간이 되는 돌궐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때문에 돌궐의 강력한 동맹 관계였던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를 조상으로 둔 한국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던 것이죠.
6.25 전쟁 파병
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1950년 한반도에서는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때 터키는 민국, 영국, 캐나다에 이은 연합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15,000여 명의 병력을 파병하였습니다. 이 병력들은 대부분 터키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6.25 전쟁사에 길이 남을 맹활약을 남깁니다. 비록 초반 '군우리 전투'에서는 준공군에게 포위당해 치욕스러운 패배를 경험하지만 터키군은 이를 바득바득 깔며 복수를 다짐하는데 '금양장리 전투'에서 터키 군은 착검한 채 중공군 진지를 향해 돌격해 2000여 명의 준공군 사상자를 냅니다.
그에 반해 터키 군은 백 여 명 정도의 사상자만 발생하였고 끝내 고지점령에 성공하죠. 전투 후 준공군 사망자 대부분이 개머리판에 의해 두개골이 박살 난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전투로 터키군은 '군우리'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를 완벽하게 회복했고 이 공적을 인정받아 터키 1 여단은 미 대통령 부대표청을 수여받습니다.
6.25 전쟁고아를 돌보다
그리고 전투뿐만 아니라 이들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도 했습니다. 터키 군은 6.25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역 주변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데려와 부대에 천막을 치고 하나 둘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원이 30 여 명으로 늘자 군인들은 인근 도축장 건물을 빌려 고아원으로 만들었고 군인들은 자신들의 월급 중에서 5달러씩 모아서 그 돈으로 고아원의 운영비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군인들은 전쟁을 겪은 가엾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앙카라 고아원은 1952년 당시 설립되었는데 부모를 잃은 640여 명의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휴전 이후에도 앙카라 학교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죠. 2018년에는 전쟁고아였던 김은자 씨와 터키 군인 슈레이만 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일라'가 대한민국과 터키에 동시 개봉되기도 했는데 터키에서는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전쟁 때 터키 군이 참전한 이유에 대해서는 단순히 형제국가라는 이유보다는 나토에 가입하기 위한 목적이 크기도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터키는 소련의 공산화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를 제외한 동유럽 전 지역이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어버렸고 지리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있던 터키는 반드시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해 국가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전쟁이 터졌고 터키는 미국을 수장으로 하는 연합군에 합류함으로써 이념적 선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NATO 가입
그리고 한국 전쟁 파병을 통해 발언권을 얻어낸 터키는 1952년 고대하던 나토 가입에 성공합니다. 순수하게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해서 파병을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름도 모를 약소국가인 대한민국을 위해 터키 군이 목숨 걸고 치열하게 싸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터키 군 참전병사들을 통해 끊임없이 증언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터키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현재 진행형입니다.
2016년 12월에는 양국 합작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인 이스탄불의 해저 터널을 건설하기도 했으며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기술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의외로 터키 국민이 생각하는 한국은 그렇게까지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터키 현지에서는 일본, 한국 그리고 자신들과 우호적인 모든 국가들을 형제라고 외치는 터키인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는데요.
이는 형제에 대한 개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형제 의미는 친구 이상의 피를 나눈 사이, 즉 가족만큼 소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터키인들에게 있어서 형제 의미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반면 예로부터 터키인들이 살고 있던 아나폴리아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잇는 관문에 위치하여 다양한 민족들이 왕래하는 곳인데요. 이러한 지리학적 특성으로 인해 터키인들은 외부인들에게 매우 개방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두의 형제야'라는 마인드가 형성되었죠. 즉 형제의 나라라고 인식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한국의 엄청나게 관심이 많고 한국만 특별한 국가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양국 정부는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인정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서 꾸준한 문화적 교류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스포츠 관련 교류도 매우 활발한 편인데 우리나라의 김민재 선수가 뛰었던 터키 이스탄불의 명문 축구클럽 '페네르바체'는 2021년 대한민국 광복절 때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슬픈 역사 속에 스포츠가 한국인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멀리서나마 형제의 나라에서 함께 외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광복절을 경축합니다."
해시태그 '대한독립 만세'라는 터키어와 한국어로 된 문구를 공식 SNS 계정에 업로드하여 한국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1400년 전 시작된 양국의 우호 관계는 1000년의 시간이 흘러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터키 참전 농사들에게 경위를 표하며 현재 지진으로 힘들어하는 모든 터키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봅니다.
터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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