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티, 당신도 가지고 있나요?
우리가 매일 입는 옷 알고 보면 인류의 역사와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옷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1980년대 힙합과 시대를 아우르는 명작 영화도 등장합니다. 오늘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옷, 우리가 즐겨입는 후드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최초의 후드티
후드티에는 모자가 달려있어서 머리를 보호해 주고 체온을 유지해 주는 장점이 있죠. 때문에 처음 후드티는 노동자와 운동선수를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1930년대 초 뉴욕 로체스터에 있던 '니커보커 니팅 컴퍼니'라는 스웨터 공장에서 두꺼운 소재를 제공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 제봉법으로 스웻셔츠(맨투맨)에 모자를 달아 지금의 후드티를 만든 건데요. 이 회사가 바로 오늘의 챔피언입니다. 천 챔피언 사장 해럴드 립손은 당시 추운 날씨로부터 노동자와 운동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드를 달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챔피언은 고등학교와 협력해서 축구 선수, 육상 선수들이 입을 후드티를 만들었는데 선수들이 여자 친구에게 자기 운동복을 주기 시작하면서 학교 안팎으로 후드티가 유행했고 운동복에서 일상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후드티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건 힙합 그리고 록키의 영향이 큽니다.
후드티와 힙합
1970년대 뉴욕 브롱스 랩과 턴테이블리즘, 그라피티, 비보잉은 '힙합'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힙합의 기원이 된 GRANDMASTER FLASH라는 DJ가 있었습니다.) 남의 건물이나 담벼락, 지하철, 버스에 몰래 그림을 그렸던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주차장, 저수지, 빈 수영장에서 몰래 스케이트를 탔던 스케이터들에게 후드티는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고 거리에서 춤을 추는 비보이들도 후드티를 즐겨 입었습니다. 그라피티 개척자라고 불리는 '에릭 펠리스 브렛'은 후드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죠.
그리고 1980년대 중반 '갱스터 랩'이 세상에 등장합니다. 꼭 갱스터만 갱스터랩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이애미의 대표 래퍼 '릭 로스'는 교도관 출신이기도 하죠. 하지만 초기에 갱스터 랩은 진짜 갱스터들의 노래였습니다. 갱스터랩의 창시자인 '스쿨리 디'는 필라델피아 갱단 소속이었고 최초의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래퍼이자 지금은 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아이스 티(Ice-t)도 갱단 '후버 크립스'의 단원이었습니다.
거친 래핑과 가사가 특징인 갱스터 랩은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았고 90년대 갱스터 랩 황금기를 거치면서 N.W.A , 2 PAC, BIGGLE, SNOOP DOGG, 50 CENT 같은 랩스타가 탄생합니다. 갱스터랩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갱스터의 유니폼이었던 후드티는 이제 래퍼와 래퍼 지망생들의 필수품이 보입니다.
영화 '록키'의 명장면
영화 록키를 한 번이라도 보셨다면 회색 후드티를 입고 훈련하는 장면 기억하실 겁니다. 영화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가난한 아마추어 복사 록키가 우연히 헤비급 챔피언과 맞붙을 기회를 갖게 되고 시합을 준비하고 시합을 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록키를 검색하면 록키 트레이닝이 가장 먼저 뜰 정도로 록키가 회색 후드를 입고 훈련을 하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에 대해서 덕분에 필라 아델피아 미술관 앞 계단은 '록키 계단'이라고 불리며 필라 벨 피아의 관광 명서가 됐는데요.
사실 이 장면을 촬영했던 당시에는 예산이 부족해 미술관의 허가를 받지 못해서 새벽 시간에 몰래 촬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 때문에 동이 틀 무렵 계단 위에서 양팔을 짚게 되는 명장면이 탄생했죠. 록키는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는데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출된 알리 대 스탤론의 스파링 장면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무하마다 알리는 록키의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록키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당시 복싱의 최고 근엄이 었던 알리의 반응을 걱정했다는데요. 우려와 달리 록키를 본 알리는 감동을 받아서 실베스타 스탤론에게 직접 헌정 시까지 써줬다고 하죠.
범죄와 후드티
후드티가 대중화됐고, 세기가 바뀌었지만 후드티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보안용 CCTV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후드티로 얼굴을 가리는 범죄자들이 많아졌고 2005년 영국 캔트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후드티를 입은 방문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일까지 벌어지죠. 이때 영국 보수당 의원이었던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후드티를 청소년 문제에 빗댄 'Hug a hoodie : 후디를 안아주자.'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습니다.
"우리,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자주 후드티를 공격적인, 젊은 갱스터의 유니폼으로 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후드티는 '공격'보다는 '방어'의 의미가 큽니다. 위험한 환경에 노출이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머리를 숙이고, 어울리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이죠." "
후드티가 단순히 한 종류의 옷이 아닌 특정 계층의 상징이었고 후드티를 입은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후드티의 오해
그리고 2012년 후드티에 대한 편견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트레이본 마틴 사망사건'인데요. 2020년에 일어났던 플로이드 사망사건처럼 미국 내 인종 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했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12년 2월 26일 비가 오던 저녁, 회색 후드티를 입은 17세 흑인소년 트레이븐 마틴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같은 시간 자율방범대원 조지 짐머만은 동네를 순찰하던 중이었고 마틴을 보고선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경찰은 짐머만에게 따라가지 말고 기다리라고만 했지만, 짐머만는 마틴을 쫓기 시작하였고 도망치던 마틴이 결국 짐머만에게 잡히면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마틴은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짐모만은 마틴에게 총을 발사했습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마틴 그에게는 스키틀즈 한 봉지와 음료수 한 병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마틴을 죽인 짐머만은 곧바로 풀려납니다. 플로리다의 'Stand Your Ground'라는 정당방위법이 적용됐기 때문인데요. 이 법은 다른 정당방위법과는 달리 총기 같은 물리력을 사용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걸 허용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사망해도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짐머만이 풀려나자 미국 전역으로 거센 항의가 일어났고 오바마 대통령도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나섭니다. 검찰은 뒤늦게 짐머만을 2급 살인 혐의를 기소했지만, 14개월 뒤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짐머만은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시카고, 워싱턴 디시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이때 시위자들은 모두 후드를 입고 있었습니다.
백만장자의 후드티
오늘날의 후드티는 특정 계층을 나타내는 옷과는 거리가 멉니다. 페이스북 CEO이자 세계적인 백만장자 마크 저커버그는 후드티를 즐겨 입는 걸로 유명한데요. 2013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후드 집업 차림이 화재가 됐죠. 저커버그가 공개한 옷장 사진에도 같은 색 후드티가 여러 벌 걸려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저커버그는 이런 후드티 사랑에 대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쓸데없는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인기가 많은 슈프림, 배트멍, 오프 화이트 후드티는 40만 원에서 80만 원 선을 호가할 정도이고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에서는 수백만 원짜리 후드티가 팔리고 있기도 합니다. 노동자와 운동선수의 유니폼으로 세상에 나와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는 백만 시위자들이 입었던 옷 길바닥 문화의 상징에서 신흥 갑부의 분신이 되기까지 후드티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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