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참맛을 느끼다.
추석을 앞둔 며칠 전 제주에 갈 일이 생겨 제주로 향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게 된 제주이지만 일정이 바쁜 관계로 공항에 도착 후 서둘러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차로 이동을 하며 밖을 보니 어제 지나간 태풍 '힌남노'로 인해 도로 곳곳에는 휘어진 야자수나 복구작업을 위한 '공사 중' 팻말들이 보였다. 제주는 아직 강풍을 동반했던 태풍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이다 보니 정말 간단하게 짐도 없이 제주를 방문했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오늘 일정이 끝나면 특별한 것 없이 숙소에 일찍 들어가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여차저차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그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띵동~' 제주에 살고 있는 지인이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주에 왔으면 연락을 해야지~'라며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때마침 일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딱히 바쁜일도 없는 관계로 간단하게 술이나 한잔 하자는 지인의 말에 나는 선뜻 동의를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오마제주'라는 오마카세 전문점이었다. 말로만 듣던 제주도 오마카세. 지인이 알고 있는 경력이 많은 셰프님이 아담한 사이즈의 오마카세를 오픈하셨는데 그쪽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 '오마카세' 셰프님이 어떤 음식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실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귀포시청(제1청사)이 근처에 위치한 오마제주는 바로 옆에 공용주차장이 있어서 주차가 용이했고 근처에 맛집들이 여럿 포진해 있어서 인근에서 술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시기도 편한 곳이었다. 주차를 하고 약속 장소로 가니 환하게 불이 켜진 가게가 보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하얀 셰프 복장을 하신 사장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생각대로 가게 안은 깔끔했고 맛있는 초밥 향이 풍기고 있었다. (나중에 주방장님에게 들은 얘기지만 이곳은 9월 초에 가오픈을 한 상태로 운영 중이고 15일에 정식 오픈을 한다고 했다.)
▲ 오마제주 예약문의 010-8978-5537
오마카세 음식의 향연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지인이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오랜만이라며 악수를 하고 안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최근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었던 이야기부터 태풍이야기, 최근 물가 이야기 등등 쉴 새 없이 웃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앞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던 셰프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즉석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술은 각자 취향에 맞게 하나씩 고르자고 해서 나는 일본 사케인 '간바레오토짱' 을 주문했다.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아빠 힘내세요' 정도의 이름이 되는 한국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케 중 하나이다. 사과향이 약간 들어간 탓에 끝 맛이 살짝 달콤한 간바레오토짱은 도수가 우리나라 청하랑 비슷한 수준이다. 청하는 13도이고 간바레오토짱은 14도이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스시와 먹기에 참 좋은 술이다.
셰프님은 우선 속을 부드럽게 채우고 술을 한잔 하시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질 않아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고 곧 차완무시라고 불리는 계란찜이 나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계란 요리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계란찜도 많이 좋아한다. 특히나 푸딩처럼 탱글탱글하고 탄맛이 전혀 없는 것을 좋아하는데 차완무시는 딱 그 맛이었다.
차완무시로 속을 달래자 본격적으로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는 전복찜부터 문어숙회, 크래미 한치볼과 자몽 샐러드까지 제주에서 난 싱싱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이라 그런지 바다향이 진한듯하고 정말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요리는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인데 여기 음식들이 정확히 내 취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마사케의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초밥과 생선회가 차례대로 준비되고 있었다. 셰프님은 바다의 파도가 연상되는 접시를 준비하고 싱싱하게 손질된 횟감을 꺼내 맛있는 크기로 포를 뜨고 계셨는데 한눈에 봐도 횟감의 빛깔이 신선함을 발하고 있었다. 초를 넣어 양념을 하듯 모양을 낸 뒤 종류별로 마들어진 초밥과 회가 내 접시 위에 올라왔다.
셰프님은 손에 초를 발라가며 뚝딱뚝딱할 때마다 맛있는 초밥들이 올라오는데 눈으로 보는 재미와 맛까지 너무 좋아서 먹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정말 여러가지 생선회와 초밥이 계속해서 나왔고 다들 각자의 맛을 뽐내듯 조화로운 맛을 냈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먹기도 해야 돼서 사진을 모두 찍지는 못했다. 그만큼 다양한 회 요리들이 준비되어 나왔다.
부드러운 생선회와 초밥을 먹고 나니 이번엔 빠삭한 튀김이 나왔다. 나는 처음 튀김요리 위에 올라간 노란 것들이 당연히 면 종류의 튀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삭거리며 단 맛이 나길래 셰프님께 재료가 무언지 물었고 고구마라는 얘기를 듣고 짬짝 놀랐다.
예전에 장사를 하실 때 우럭을 이용한 우럭탕수를 만들어 판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이 튀김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직접 소면 굵기로 잘게 썰어 직접 튀겨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쉽지가 않다고 한다. 튀김 모듬은 아삭한 식감에 달콤한 끝 맛이 아주 좋았다.
그 외 여러 가지 음식들
오마카세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격에 놀라는 일이 많다. 제주에도 오마카세 전문점이 몇 곳이 있는데 보통 인당 10만 원 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너가 런치보다 메뉴가 추가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싸기 마련인데 이름난 오마카세의 경우 2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경력을 쌓인 셰프님으로 아주 맛있는 음식맛을 자랑하는데도 불구하고 런치 4만 원대, 디너 6만 원대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을 하고 계셨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다면 가격이 많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반주처럼 간단히 마신다면 분위기나 맛, 가격에서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유쾌한 셰프님 덕분에 너무 즐거웠는데 오마제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팁은 셰프님이 제주 토박이 시라 주변에 맛집이나 괜찮은 숙소, 돌아볼 만한 관광지들을 아주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제주 여행을 갔다가 정보가 필요한 분들은 맛있는 음식도 드실 겸 방문하면 좋은 정보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세상 사는 이야기로 즐거운 자리를 가지다보니 다음날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번에도 꼭 다시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빨리 그날이 되어 제주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 이날 혼자서 숙소에서 외롭게 있을 나를 불러내 준 나의 고마운 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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