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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탐구생활

노르웨이 그룹 '아하 (a-ha)' - Take on Me

by 웅탐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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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그룹 'a-ha'

노르웨이 하면 비틀즈 노래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거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복고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a-ha (이하 '아하')입니다. 팝의 불모지에서 나온 국민 영웅이라고 할 수 있죠. 본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았다고 얘기하는데 2009년에는 노르웨이 국왕한테 훈장도 받았습니다. 34년 전 노래 하나로 10억 회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Take on Me'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으로 제일 유명할 것입니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송된 이종석, 한효주 주연의 드라마 'W'와 똑같은 콘셉트를 30년에 먼저 보여준 신화적인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Take on Me
▲ 'a-ha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뮤비는 마이클 잭슨이 만들었다면 아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뮤비를 만들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고 드라마 본 것처럼 너무 설레서 잠을 못 잤다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8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가 정말 많았다고 하니 'Take on Me'  뮤직비디오에 얽힌 뒷이야기와 국민 영웅이 된 이 밴드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ha'의 탄생

노르웨이에서 음악으로 성공의 꿈을 꾼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기타인 '폴 왁타 샤보이'와 '키보드 마그넷 프루 홀맨'은 원래 사이키델릭 락의 신봉자로 서로 취향도 비슷하고 목표도 비슷해서 같이 음악을 하다가 월드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윌드 스타가 되기 위해선 첫 번째가 영어를 배워서 아바처럼 영어로 노래해야 했으며 두 번째가 대중성 있는 리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본인들이 추구하는 사이키델릭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들은 성공을 향해 달리길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 15살에 나름 중독성 있는 키보드 리프를 하나 만들게 되는데 그게 바로 'Take on Me'의 시초가 됩니다.

 

둘은 그들을 완성시킬 마지막 조각으로 멋진 보컬을 찾게 됩니다. 몇 차례 다른 멤버들과 음악을 하다가 꽃미남 '모튼 하켓'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그넷 말에 따르면 "그 친구는 모든 파티에 초대되는 인싸 중 인싸였다. 반면, 우리는 꼽사리 껴서 공짜 술이나 얻어 마시는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모튼 하켓은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들이 만든 음악이었습니다. 모튼에게 'Take on Me'를 들려주자 모튼은 무조건 히트라고 예상했다고 합니다. 멤버들은 이때를 아하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셋은 그렇게 아하를 결성하고 혈혈단신 영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a-ha' 데뷔

그리고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의 성공하게 되는데 오디션에서 세 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때도 'Take on Me'를 불렀다고 하니 명곡은 누구나 들어도 티가 나나 봅니다. 이쯤 되면 이 곡과 아하와는 결코 때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워너 쪽에서는 노래도 노래지만 모튼의 목소리와 비주얼도 멋있었고 아하가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Take on Me'의 성공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성공을 예상했지만 이상하게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 발매돼서 두 번 모두 차트에서 미끄러지는데 사실 아하 멤버들로서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아하는 거의 반쯤 그로기 상태가 돼서 우울 자체였다고 합니다. 초기 버전을 여러분이 들어보시면 지금의 'Take on Me' 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굉장히 밋밋하고 뮤비도 엉성한 듯 빈약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막상 시장에 나오고 보니 대중을 사로잡을 확실한 뭔가가 많이 부족했던 탓에 성공을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실패했으면 대부분 이 노래는 안되는구나 하고 접었을 텐데 워너 브라더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스타급 지원군을 투입하여 이 노래를 하나하나씩 바꿔 나가게 시작합니다.

 

아하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워너가 죽은 음악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입니다. 프로듀스는 신시사이저가 약한 걸 간파하고 키보드를 거의 20번씩 오버 더빙합니다. 이 곡 하면은 리프밖에 생각이 안 나게끔 기계음으로 도배를 해버립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뮤비가 약한 걸 인지하고 뮤비를 완전히 재창조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각적으로 어떤 포인트를 줘야 음악의 전파를 탄다고 판단하고 만화를 그려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장장 4~ 5달에 걸쳐서 몇 천 컷을 그리게 됩니다.

 

먼저 영상을 찍으면 그걸 그대로 받아서 한 컷씩 그렸다고 하는데 이것을 로토스코프 기법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 되니 이 뮤비는 지금까지의 뮤비와는 달리 완전 혁명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참신한 발상을 올스타급 지원군이 달라붙어서 완성하다 보니 퀄리티는 어마어마 해졌고 아하의 'Take on Me'는 결국 세 번째 시도 끝에 엄청난 빛을 보게 됩니다.

 

'Take on Me' 발표와 성공

뮤비는 만화책을 보던 여자에게 만화 속 등장인물이 손을 뻗어 만화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데 마지막에 여운을 주는 동시에 반전까지 마련하면서 한 편의 동화를 완성하게 됩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뮤비를 보면 정말 설레어서 잠을 못 잘 것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만화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Take on Me'가 일종의 OST처럼 느껴지고 노래에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듣는 사람은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도록 제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뮤비와 모튼의 외모에 감명받았고 그 와중에 귓속에는 'Take on Me'의 멜로디가 맴돌면서 아하는 그렇게 세계를 휩쓸게 됩니다.

 

a-ha
▲ 노르웨이 그룹 - 'a-ha'

 

사실상 이 곡은 아하 멤버들과 이를 살리려는 레코드사의 멋진 걸작품이었습니다. 인구 400만 명의 나라에서 나온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이 당시는 왬, 듀란듀란, 컬처클럽 같은 그룹들이 10대의 마음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영국 그룹이었는데 여기에 아하가 영국 소속이 아님에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니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들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아하는 노르웨이 뮤지션 최초의 빌보드 1위, 최초의 그레미 노미네이트 , MTV 어워즈에서 멋진 뮤비 덕에 너무나 당연하게 6관왕의 위협을 달성하며 그들의 1집을 전 세계적으로 1100만 장을 팔아버립니다.

 

▲ 'Take on Me' 뮤직비디오

아하가 데뷔하자마자 뉴 웨이브에 또 다른 웨이브를 몰고 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실 팝을 얘기할 때 아하가 좀 박대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Take on Me'의 성공은 음악보다 뮤비 빨 아니냐 또는 사실상 히트곡이 하나뿐인 원히트 원더 아니냐 등 이런 말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거의 원히트 원더로도 많이 분류가 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Take on Me' 이후의 빌보드 성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뿐이지 미국만 외 많은 나라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하는 'Take on Me'이외에도 정말 좋은 곡이 많습니다. 아하가 뮤비로 히트를 해서 그런지 이후의 뮤비들도 모두 하나씩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간 새로운 뮤비 장인의 독특한 이미지들이 다 있습니다. 특히 'The Sun Always Shines on TV'의 뮤직비디오는 'Take on Me' 엔딩에 또 한 번 반전을 준 케이스로 한 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Take on Me' 이후

흥행엔 분명히 세련된 멜로디도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완성한 마지막은 모튼 하켓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얘기하는 잘생긴 외모는 매력의 정점이었고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당시 노르웨이 밴드론 상상도 할 수 없던 월드 투어도 돌게 되었습니다. 2집이 바로 월드 투어 중간에 나오게 되는데 1집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전을 안겨주면서 훨씬 더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게 곡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집보다 2집을 더 명반으로 꼽는 팬분들도 많았고 이 시기 좀 더 어두운 약간의 자아성찰적인 가사의 특성들 때문에 얼터너티브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냥 마냥 팝만 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느낌의 앨범이었습니다. 그리고 'Take on Me'에 너무 거대했던 성공에서 벗어나려는 느낌도 드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하에도 성공 이후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고 합니다. 밴드 내에 지분과 크레딧을 두고 벌이는 어느 밴드들과 똑같은 그런 조그만 갈등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소꿉친구들도 그런 갈등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아하는 이 앨범으로 미국 바깥에서는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007 리빙 데이라이트'의 OST를 만들면서 이전에 듀란듀란과 비교가 되기도 했으며 세계적으로 꾸준히 선전하는 그룹이 되었고 특히 남미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1991년에 브라질에서 20만 명을 동원하면서 유료관객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집은 분위기로 보면 1집과 2집의 중간쯤 되는 거 같은데, 사실 007 OST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세일즈는 보장된 앨범이었습니다. 'You are the One.' 같은 곡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이 시기의 아하는 이제 인기에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음악을 한 것 같았습니다.

 

4집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전에 없던 어쿠스틱 기타가 들어가고 피아노가 들어갑니다. 대중의 인기도 이때를 기점으로 그래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전 앨범들이 약간 도시적이었다면 이 앨범은 조금 전원의 느낌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본인들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약간 이별을 준비하는 앨범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잘 만든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뚝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아하는 정말 1993년에 앨범 하나를 더 내고 무기한 휴식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룹 해체와 재결합

멤버들의 지향점이 달라지고 인기도 하락세를 보이면서 서로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마그넷 같은 경우는 밴드 막바지에는 아예 그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활동 중단 이후 실제로 화가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모튼은 솔로를 하고 폴도 자기 밴드를 만들면서 꾸준히 앨범을 내고 그러다가 1998년에 노벨 평화상 축하 공연을 하면서 재결합하게 됩니다. 마그넷 말로는 '처음으로 다시 모인 자리였는데 우리는 모이자마자 새로운 작업물을 고민하고 있었다.' 라며 재결합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처럼 아하는 지금도 쭉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차례 잠시 해체를 선언하고 이별 투어도 했다가 2015년에 다시 합치면서 다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그넷은 또 왜 합치냐고 볼맨 소리를 했다고 하지만 대 결국 두 명의 뜻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아하는 아직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 2009년은 노르웨이 1급 훈장까지 받으면서 완벽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됩니다. 물론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Take on Me' 하나로 전체를 깎아내리기엔 너무나도 좋은 곡을 많이 남긴 밴드인 것도 사실입니다. 원히트 원더로 남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Take on Me'를 제외한 다른 주옥같은 명곡들도 많으니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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