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초대한 홈캉스 (인천광역시)
작년 서울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 간 동생네가 부모님과 우리 식구를 초대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린 조카를 데리고 휴가를 떠나기 힘든 상황이라 집에서 홈캉스를 즐기기로 하고 우리는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차를 타고 가야 할지 기차를 타고 가야 할지 결정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대부분의 시간이 매진이 되어 버린 ktx 기차 시간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이른 아침 시간의 표를 급하게 예약하게 되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부모님 댁에도 들러 모든 식구들을 태운 다음 출발역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차가 막힐 법도 한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 위는 한적했고 기차역에 있는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음료와 간식거리를 산 다음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 오르자 다들 기차여행이 오랜만이라며 기분이 설렌다고 말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오늘의 코스를 정하자며 쫑알거리던 것도 잠시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한 탓에 모두 그렇게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지 1시간 정도 잠들었다가 서울에 도착할 때 즈음 잠에서 깼다. 처음 기차에 올랐을 때 많이 비어있던 좌석은 대부분 사람들로 차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식구들이 깨어 있는지 뒷자리를 한번 둘러보고 잠시 후 내려야 할 것 같으니 소지품 빠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하라고 전했다.
잠시 후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울리고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인천으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로 환승을 했고 바로 동생이 살고 있는 검암으로 행했다. 가끔 오게 되는 서울이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서울의 교통의 편의성이다. 정말 자차가 있는 사람들도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공항철도는 30여분 만에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고 항상 동생이 멀리 살고 있다고 생각만 하셨던 부모님께서도 이렇게 빨리 막내아들 집에 올 수 있냐며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씀을 하셨다. 동생을 멀리서 온 가족들을 반기며 여름인 만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며 집 앞 장어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사진을 찍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사진을 잘 찍지는 않았지만 풍천장어라고 소개된 장어는 쫄깃함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고 입가심으로 메밀국수까지 시원하게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웠다. 반주로 소맥을 두어 잔 마시고 나온 탓에 다시 돌아온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자니 눈이 살살 감겨왔다.
배부른 포만감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내 몸을 노곤하게 만들고 거실에 누워있던 나는 낮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딸내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서울투어를 해야 할 시간인데 왜 자고 있냐며 빨리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화장실에 들러 얼굴 상태를 확인하고 눈에 붙은 눈곱을 정리한 뒤 옷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야 하니 두 곳 정도만 둘러보고 오자며 우리 식구 4명 만의 그렇게 서울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홍대입구와 코엑스 몰
미술을 좋아하는 딸내미는 언젠가부터 홍대(홍익대)에 질문을 종종 했다. 사춘기 여학생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라 서울에 가면 홍대를 가보자고 했던 적이 있었기에 오늘은 무조건 홍대부터 가보기로 했다. 홍대입구는 다행히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투어를 하는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홍대입구 8번 출구로 나오자 많은 인파에 한번 놀랐다. 사실 대구는 코로나의 여파가 있은 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만큼은 회복이 되지 않은 느낌인데 서울은 달랐다. 코로나 이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듯 수많은 사람들이 홍대입구를 채우고 있었고 저마다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에 또 다른 세상에 들른 듯 이색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여행 전날 일기예보에서 전해준 내용처럼 여행 당일은 어느 때보다 후덥지근한 폭염의 날씨를 보였고 얼마 걷던 우리는 실내 에어컨 바람을 찾아 '카카오 프렌즈 x 공미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처럼 더위를 피해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3층에 위치한 공미학에는 사진을 찍을 만한 포토존이 몇 군데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후 카카오 프렌즈를 나와 홍대 근처 골목으로 돌아보기로 한 우리는 여기저기 발길이 닿는 곳으로 무작정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이길래 다가가 보았다. 댄스 베스킹을 하는 듯해 보였고 무대 가운데는 세련된 안무를 보이며 춤을 추는 댄서가 있었다. 동작이 바뀔 때마다 순간순간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가 들렸다. 20대 시절 나 역시 홍대를 동경하며 이곳에 왔던 추억이 있다. 다시 한번 방문한 이곳은 여전히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댄서는 걸그룹 베이비스의 멤버라고 한다.)
댄스 버스킹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화려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라피티가 그려진 변화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는 골목 정화 사업이 많이 시행되면서 골목마다 벽화가 그려진 곳을 예전보다 쉽게 볼 수 있다. 시장 골목이나 초등학교 인근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들이 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벽화의 취지 자체가 달라 벽화의 수준을 논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겠지만 홍대입구 골목에 그려진 '플레이 그라운드'의 벽화들은 단순한 벽화의 수준을 넘어 거의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양한 색채와 그림의 아이디어가 국내 최고의 미술대학 앞임을 증명하는 듯 멋져 보였다.
홍대의 예술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더위에 지친 우리는 넓은 실내에서 투어를 즐기기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코엑스 몰'이다. 실내 투어를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형 쇼핑몰과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곳인 만큼 우리는 홍대 입구역에서 2호선을 타고 삼성역으로 가기로 했다. (9호선으로 환승해서 갔다면 더 빨리 갔을 텐데 머리 회전이 느려진 듯한 느낌은 더위 탓으로 돌려본다.)
삼성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자 엄청난 고층의 건물들이 이곳이 서울임을 알려주었다.
코엑스 몰에 들어서자 기둥에 설치된 화려한 전광판에 이끌려 우리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걸어갔다.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코엑스 몰의 상징과도 같은 '별마당 도서관'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tv에서 본 곳이라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책들을 골라 독서를 하는 모습이었다. 책상에 앉거나 계단에 앉거나 때론 그냥 서서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독서와는 참 많은 거리를 두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그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다. 책이 사람의 정서와 삶에 많은 안정과 지식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 역시 지금은 책과 가까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곳은 성인들뿐 아니라 어린이들 역시 책에 흠뻑 빠져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왠지 모르게 절로 독서병이 점염이 될 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저것을 둘러보고 쇼핑도 하고 푸드코트를 들러 시원한 음료와 도넛도 먹은 후 영풍문고를 가려는데 동생에게 야식을 준비할 테니 천천히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잠시 영풍문고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이 있는지 둘러보고 책을 한 권 산 다음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코엑스 몰을 나오기로 했다.
9호선을 타기 위해 봉은사역 쪽으로 나오는 길에 출구 옆에 마련된 로맨스 웹툰 '상수리나무 아래'의 포토존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것 하나까지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라 많은 사람들이 왜 서울의 문화생활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도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번 서울투어가 비록 긴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알차지는 않았지만 다음번 서울 여행을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인천으로 향했다.
여행을 마치며
다음날 오전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며 우리는 짧고 굵은 서울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맛집을 알고 있으니 다 같이 점심을 먹자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작고 한적한 어느 마을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김천시에 위치한 어모면이라는 곳이었는데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식당 주차장에 빼곡히 주차된 차들만으로 이곳이 맛집임을 알 수 있었다.
평일에는 넓은 주차장도 모자라 인근 차도까지 차들을 주차하고 들어와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음식도 먹기 전에 슬쩍 군침이 돌았다. 식당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도 자리에 앉아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했다. 시원한 물이 탁자 위에 올라오고 나는 컵 한가득 물을 채워 천천히 들이켰다. 그때 왠지 모르게 바빴던 일정 속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긴장감이 내려가는 듯 왠지 모를 안도감이 찾아왔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 아닌 가이드가 되어 식구들의 편의와 일정을 소화하는데 남모를 긴장과 나름대로의 가장이자 큰 아들이라는 사명감 같은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나 보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여행의 마무리가 되는 시간이 되자 시원한 냉수와 함께 사라진 느낌이라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이런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나에겐 생각을 많이 갖게 하는 좋은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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