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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탐구생활

엘링 홀란드, 지금껏 이런 축구 선수는 없었다.

by 웅탐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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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 홀란드

엘링 홀란드-맨시티
▲엘링 홀란드 - 그는 아버지와 같은 날짜에 맨시티에 입단했다.

어린시절 홀란드

오늘은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를 충격에 빠뜨린 뒤 영국으로 날아와 프리미어리그까지 모조리 씹어먹고 있는 노르웨이발 허리케인 무서운 신예 엘링 홀란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홀란드는 현재 축구에 있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신성 득점 기계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실력으로 리오날 메시와 호날두 이후 세계 축구계를 지배하게 될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2000년 7월 20일 노르웨이인이지만 잉글랜드 니즈에서 태어났던 엘링 홀란드. 그의 아버지 역시 축구선수로 알프잉에 홀란드가 2000년 당시 내지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을 했었고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알프잉에 홀란드는 1993년부터 10년간 영국 무대에서 활약하며 180 경기 이상 뛰었고 조지 웨아, 앨런 스미스, 해리 키웰 등 굵직한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대표적으로 맨유전 로이킨 살인 태클의 사건의 당사자가 바로 알프잉에 홀란드였죠. 어린 시절 호날두, 즐라탄, 슈퍼스타들도 좋아했지만, 홀란드에게 롤 모델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프로 생활을 했던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86 센티미터의 장신이었던 아버지와 육상 7종 경기의 챔피언이었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일까요?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남다른 체격을 가졌던 홀란드는 아버지가 태어났던 곳이자 프로 선수로 데뷔했던 노르웨이의 남서 끝자락이 작은 도시 브뤼네에서 6세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합니다.

 

입단 당시 홀란드의 멀리뛰기 점프 기록은 1미터 63 센티미터 남자 고등학생이 평균 1.9 미터를 뛰었으니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활기 넘치고 유쾌했던 홀란드는 축구뿐만 아니라 골프와 육상 핸드볼까지 두루 경험을 하면서 전문 스포츠인으로 성장을 합니다.

 

13세 때까지 그를 7년간 가르쳤던 브뤼네 코치는 홀란가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성장할 수 있음을 직감했을 정도 브뤼네는 노르웨이 프로 축구팀이긴 했지만, 홀란도가 입단할 당시만 해도 노르웨이 2부 리그 9위에 머물렀던 그저 그런 전력을 가진 구단이었습니다. 우리네 유스클럽에서 공을 천 홀란드는 2군 팀에서 열네 경기 18 골을 넣는 골잡이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드러냈고 구단 측에서도 공에 대한 집착과 탁월한 골 결정력을 갖춘 혼란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합니다.

 

15세 때까지 다소 작고 말랐던 홀란드의 피지컬이 급성장하기 시작해 이 년 만에 17 센티미터가 자라는 등 무서운 괴물로 탄생합니다. 케밥과 피자를 좋아했지만, 선수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식단을 꾸리기 시작했고, 영상으로 경기 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회는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죠. 2016년 5월 12일 리그에 대비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성인팀에서 후번 조커로 출자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탈인간급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이적을 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2017년 2월 1일 2억 6000만 원으로 몰데로 이적을 합니다. 아무래도 브뤼네가 2부 리그로 강등이 된 이 컸습니다. 고향으로부터 450킬로미터 나 떨어진 몰데에서 새로운 생활을 해야만 했지만, 그는 데뷔 경기였던 노르웨이 컵 대회에서 데뷔 전 데뷔 골을 기록합니다. 노르웨이 명문 몰데로 이적한 후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홀란드에게도 실연은 다가옵니다. 득점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슬럼프를 겪게 된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 준 것은 몰데의 감독이자 노르웨이 역대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인 솔샤르 감독의 가르침이 컸습니다. 솔샤르 감독은 개인 맞춤 훈련으로 홀란드의 침착성을 끌어올려줍니다. 효과가 통했던 것일까요? 브란전에서 경기 시작 20분 만에 네 골이나 터뜨린 것입니다. 11분 만에 헤트트릭을 달성을 했고 네 번째 골을 넣을 때는 17분이 걸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 브란은 리그 무패를 달리던 팀이었죠.

 

찰스부르크 입단

도르트문트가 홀란드를 주시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8월 노르딕 17세 이하 챔피언십에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도르트문트의 스카우터 마르쿠스 필라바는 노르웨이 유스대회를 보러 갔습니다. 물론 홀란드를 보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죠. 이때 홀란드는 16세였고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며 측면 윙어로 활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던 홀란드를 도르트문트 유스로 데려올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던 차에 이미 잘츠부르크가 한 발 더 빨리 움직였고 2018년 폴란드는 65억의 오스트리아 리그로 건너가기로 결정을 한 후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황희찬 선수와 같이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홀란드의 노르웨이 국가대표의 부름은 바로 이어집니다. 그전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거친 그의 발탁은 당연스러운 과정. 노르웨이는 홀란드를 원톱으로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외데가르드, 중원의 싸움꾼 사네르 베르예, 측면 공격에 다부진 조슈아 킹 등 젊은 공격 라인들이 속속 등장을 하면서 노르웨이는 끈끈한 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2019년 A 매치 성적을 보면 스페인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한 해 동안 4승 5무 1패에 발전된 조직력으로 성큼 성장을 합니다. 2017년 마케도니아에게 2대 0으로 박살 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홀란드는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온두라스를 상대로 홀로 9골을 터뜨렸고 노르웨이는 조별 탈락을 했음에도 홀란드가 득점왕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도르트문트와의 인연

잘츠부르크의 스트라이커 무나스 다부르 이적으로 인해서 생긴 공백으로 곧장 주전 선수가 된 홀란드가 첫 해 엄청난 활약을 펼치자 도르트문트는 무려 28번이나 스카우트를 보내며 관찰합니다. 7월 8월 9월 연속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미국 경기 11골을 기록하고 챔스 데뷔 3경기에서 무려 6골을 넣으면서 유럽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지속적인 도르트문트의 관심과 도르트문트의 레전드이자 발롱도로 수상자 마티아스 잠머가 직접 잘츠부르크 트레이닝 센터를 비밀리에 방문하기도 하면서 홀란드의 마음을 흔들게 됩니다. 작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더 큰 리그로 가서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194 센티미터에 이르는 큰 키를 가지면서 빠른 움직임 그리고 낙천적인 홀란드의 성격은 분명 빅 무대에서 통할 것임을 직감을 하고 있었죠.

 

2019년 이적시장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스카우트 필라바의 노트에는 홀란드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버리자 도르트문트 구단측으로부터 'OK' 사인이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20분 만에 헤드트릭을 꽂아버린 좋은 모습은 도르트문트뿐만 아니라 다른 빅클럽들에게까지 매력으로 다가왔고 경쟁은 불가피해집니다.

 

홀란드의 시장 가치는 따라서 엄청나게 오르게 되었고 350억이라는 가격표가 붙게 됩니다. 홀란드 영입 작전은 치열하고 또 심플했습니다. 2019년 12월 도르트문트는 잘츠부르크와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인 라이프치히에게 홀란드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홀란드를 잘츠부르크로 데려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레드불 재단 총괄이던 랄프 랑닉을 이적 테이블에 동원하기에 이릅니다.

 

랄프 랑릭은 라이프치히를 젊고 건강한 선수단으로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레드불 산하 구단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은 인물이었고 홀란드 이적설 당시에는 라이프치히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브라질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경쟁팀 중 맨유는 이미 래쉬포드를 가지고 있고 뉴스에서 그린우드가 성장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라이프치히는 이미 티모 베르너를 비롯해서 임대 선수까지 총 4명의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유벤투수는 호날두, 이과인이라는 큰 벽까지 있어 어린 홀란드는 일찌감치 포기합니다. 홀란드는 당시 바이아웃 270억이 걸려 있었는데, 모든 빅클럽들이 270억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었으므로 전적으로 팀 선택은 홀란드가 고를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도르트문트는 2018년 1월 오바메양이 아스날로 떠나가 버린 후 파코 알카세르가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확고한 원톱을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2019년 전반기의 리그 4위를 달리던 도르트문트 입장에서는 홀란드에게 충분한 출전 기회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 물론 아버지 알프잉에 홀란드는 자신이 뛰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들이 뛰기를 희망했지만, 도르트문트에서 커리어를 먼저 발달시키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습니다. 제이든 산초, 우스만 뎀벨레, 크리스티안 플리식 같은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전례까지 있었고, 홀란드 본인 역시 차세대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도르트문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맨유의 감독이자 과거 홀란드를 지도했던 솔샤르 감독은 잘츠부르크로 날아가 홀란드와 만났지만 이미 홀란드는 수개월에 걸친 도르트문트의 치밀한 영입전에서 마음이 넘어간 상황이었습니다. EPL에서 뛰기 희망했던 홀란드의 아버지 알프잉에는 맨유 구단의 러브콜이 아닌 솔샤르 감독만 이적을 원했던 것에 실망했고 솔샤르 감독이 2019년 12월 당시 입지가 불안정한 것도 또 하나의 위험 부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르트문트는 공식 스폰서인 푸마의 CEO 굴덴 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합니다. 굴덴은 바로 홀란드를 배출한 브뤼네의 전설적인 선수였기 때문이었죠.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맡았던 에이전트 라이올라가 악명 높은 장사꾼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 몰데 시절 이적설이 한창일 때 30%의 커미션에 벨기에 클럽 브뤼헤에 요구했었고, 이번에는 맨유에게 과도한 계약 조건을 내밀어 협상을 무산시켰던 라이올라였습니다. 홀란드는 현재 나이키와 계약 맺고 있지만 차후 재계약 시 푸마를 이용해서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도르트문트 이적

홀란드는 2020년 1월 3일 이적료 272억 4년 반 계약으로 도르트문트에 합류했고 2주 뒤 아우크스부르크전에 출전하게 됩니다. 첫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는 분데스리가 데뷔전 최연소 헤트트릭 2위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교체 출전이었습니다. 계속되는 미친 활약으로 분데스리가 데뷔 첫 달에 이달의 선수에 선정됩니다.

 

초반 작은 리그에서 뛰다 빅 리그로와 실패한 사례들 때문에 홀란드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홀란드는 이런 우려를 비웃듯 유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선보입니다. 적응기 따윈 필요 없었죠. 7번의 슈팅을 모두 골로 만들어냈는데 이어서 44분마다 한 골씩 넣으면서 데뷔 한 달 만에 득점 랭킹 10위 권 내에 진입한 것입니다.

 

이미 완성형 골잡이로 변모를 보인 홀란드의 나이는 아직 스무 번째 생일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당시 어디까지 성장할지 상대팀들에겐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2019/20 시즌 역시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며 홀란대는 도르트문트의 핵으로 부상합니다. 홀란드는 2020년 빅리그에 입성한 후 도르트문트에서 두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는 두 시즌 동안 공식전 88경기에서 85골을 몰아치며 최고의'괴물 스트라이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맨시티 이적

또한 지난 시즌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역대 최연소로 통산 20호 골 고지를 밟기도 했습니다. 도르트문트에서 이런 활약을 보여주다 보니 홀란드는 언제나 다른 팀들의 유혹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 그의 아버지 알프잉에 홀란드가 뛰었던 프리미어리그 맨시티로 이적료 '1348억'에 이적하게 됩니다. 주급은 무려 6억대라고 합니다.

 

2022년 7월 1일부로 맨시티에서 뛰게 된 홀란드는 축구에서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프리미어리그 역시 단번에 씹어 삼키는 실력을 보여주며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최근 경기에서 무려 3 연속의 헤트트릭을 기록하고 있으며 상대팀이 누가 되었건 바로 침몰시켜버리는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빠른 스피드와 골 결정력. 그의 플레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실력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엘링 홀란드'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기록을 축구 역사에 남길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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