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초인종을 몇 번 눌러봤지만 고장인지 되질 않아 현관을 두드리니 술을 한 잔 마신 듯이 볼에 술기운이 풍기는 내 또래 남자가 나왔다. 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 집에서 뛰어다니면 어떡하냐고 물었고 그 남자는 거실에서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고 뛴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6~7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발소리를‘다다다닥’ 내며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 쪽으로 뛰어 왔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내 앞에 서서 멀뚱 거리는 아이 앞에서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서로 조심 좀 하자'는 말과 함께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상당히 고의적으로 느껴지는 분노의 발소리가 ‘쿵쿵’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필시 그 남자가 본인도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후로도 위층에서는 자주 층간소음을 일으켰다. 여전히 아이는 뛰어다녔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의자 다리에 소음방지패드를 하나만 붙여도 끌리는 소리가 안 날 텐데 수시로 '삑삑'소리와 의자 넘어지는 '쿵'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 아파트를 여러 곳 살아봤지만 이렇게 개념 없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다시 찾아가서 항의를 해야 하나라는 맘이 들었지만 아내가 관리시무소를 통해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해서 관리실에 내용을 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모두가 허사였다. 법적인 부분이나 개인적인 항의나 결국 윗집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랫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국소적일 뿐이었고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층간소음이 반복이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들의 소리에(가늘고 높은 미성의 목소리) 나쁜 감정으로 반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인상을 찡그리고 듣고 있었고 듣는 동안 내내 기분이 불편했다. 이런 변화가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쟤들도 집에 가면 뛰어다니며 층간소음을 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놀이터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예전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왜 내가 이런 변화를 겪어야 하는가?'라며 거듭 스트레스를 받는 나였다.
그리고 어제 새로운 일이 생겼다. 평소 윗집 부부들은 다툼이 많았는데 최근 1주일에 한 번 꼴로 싸움이 벌어지는 것 같다. 단순한 말다툼이라면 나도 신경 안 쓰겠지만 아래위로 2~3층은 알만큼 크게 새벽시간에 난투극을 벌이는 것 같았다. 욕설이 오가고 물건을 던지고 서로를 넘어뜨리기도 하는지 연신 '쿵쾅쾅! 쿵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뭐 여기까지는 개인사이다 보니 둘이서 치고받고 싸울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집 식구들의 귀에 들리는 뚜렷한 아이의 울음소리는 나에게 갈등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목청이 찢어지도록 울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그만해! 하지 마! 때리지 마!" 비명 같은 어린아이의 소리가 욕실 청정에서 오래도록 흘러나왔다.
이미 새벽 2시를 넘긴 시간, 아내는 입을 막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부모들이야 화가 나서 치고받고 싸운다고 치더라도 저 어린아이는 무슨 죄가 있는 것인가? 사랑만 받아도 모지랄 판에 부모들이 자기 앞에서 온갖 욕설과 고성을 난발하며 생활용품들을 내 던지고 때리고 맞는 그 광경을 보면서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크게 될까? 어른들의 잘못된 보살핌 속에서 이 시간이 되도록 곤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잠시 뒤 소란이 조금 잦아들고 무언가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짐작하는 건 바퀴 달린 '케리어 가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주 이런 다툼이 계속되고 있고 폭력이 오가는 상황이라면 정말 헤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난 그들이 싸우는 동안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이유는 '경찰에 신고를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집안일에 참견을 하기엔 무언가 알 수 없는 찝찝함과 불편함이 느껴졌다. '괜한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끝내 통화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윗집 부부 중에 누군가 집을 나간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이번 싸움으로 생활이 이전과 많이 변하진 않겠지만 그들도 부모인 만큼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오지랖아닌 작은 바람이 생긴다. 난 다시 이사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의 말처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얼래고 달래고 다투고 싸우더라도 결코 쉽게 변하지 않음에 동의한다. 오늘도 난 2023년 나는 또 한 번 집을 옮기는 일이 생기게 될지 생각의 생각의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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